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활동지원 업무를 시작하여 막 9개월이 지난 새내기 장애인 활동지원사입니다. 내가 활동 지원하는 이용자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만 13세 태훈(가명)입니다. 태훈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또래의 아이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사색하길 좋아하나 눈 맞춤을 싫어하고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혼자서 흥얼거리며 어깨 춤을 추는 등 자신만의 고유한 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에 뒹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자신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을 때는 행동으로 나태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태훈이가 그나마 몇 마디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면 나도 태훈이 만큼 힘이 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낍니다. 태훈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만 보고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과 비례하여 태훈이의 상동행동이 줄어들고 즐겁게 지내는 날들이 늘어감에 보람을 느낍니다.
태훈이도 또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뽀로로 시리즈나 타요 등 자동차 관련 내용들을 찾아 봅니다. 뽀로로는 아이들의 대통령이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가 봅니다. 오래 전 어린 조카들에게 즐겨 보여주었던 뽀로로를 중학생이 된 태훈이는 지금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실 것도 뽀로로 음료만 찾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과일, 야채 등은 싫어하지만 자장면, 탕수육을 좋아하며, 특히 불고기, 통닭 등 고기 종류를 좋아합니다. 편식은 심하지만 밥 심이 좋아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여 이제 엄마보다 키가 더 커졌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받고 태훈이와 일상생활을 함께 하다 보니 그 동안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 출현율은 전체인구 중 약 5% 정도인데 비해 유럽 주요 선진국의 장애 출현율은 20%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교육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장애 출현 숫자가 많은 것이 아닐진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은 장애의 범위를 확대하여 사회적으로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임산부도 일시적인 장애로 인정하여 사회적인 보호를 받게 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재작년에 은퇴기념으로 프랑스와 스위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행하는 도중 미술관이나 놀이시설 등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지만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장애인 관련 교육을 받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장소나 길거리에서 유난히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장애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과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역사 등에서 시위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는 보도하지 않고 비장애인들이 출퇴근시간에 겪는 피해 만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마치 모든 사태의 발단과 책임은 장애인에게 있다는 듯이 보도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런 부당한 일들이 개선되고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지길 희망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된 장애인의 숫자는 약 260만명 정도입니다. 이중에서 유전, 염색체 이상 등의 선천적인 장애는 약 13.3%에 불과하며, 질병, 사고 등으로 후천적인 장애비율이 약 88%를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비장애인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로써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처우개선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것을 말해줍니다.
이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태훈이와 같은 자폐스펙트럼장애 및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앓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마음 속에 자신만의 성을 쌓은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의 심정과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이름을 대면 알만한 방송인이 자신의 소원은 장애인인 아들보다 3일만 더 사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장애인의 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그녀에게”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다 첫 아이 출산과 함께 10년째 장애인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씨가 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이란 책 내용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장애인을 둔 가족의 애환과 고충을 너무나 잘 표현하여 영화가 끝난 후에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극 중에서 엄마가 장애인(長愛人)은 “오랫동안 길게 사랑 받는 사람” 이라고 해석하고 싶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장애인은 사랑 없이 홀로 서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을 내용들이 고스란히 가슴 속에 다가 왔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업무는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 가족들이 일상생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에 대한 보람이 큽니다. 태훈이는 하교 후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언어 및 미술센터에서 치료수업을 받습니다. 날이 갈수록 잘 적응하며 자기 표현력이 늘고 상동행동도 줄어들어 선생님들께서 태훈이를 칭찬하십니다. 단체생활을 어려워하는 아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 및 센터수업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기뻐하는 태훈이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태훈이 엄마는 모든 것이 활동지원사 선생님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기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보람차며, 태훈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습니다.
2024. 0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