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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3 - 시커멓게 언 감자를 먹는 지혜

bluesky0321 2020. 6. 6. 22:16

 

황석영작가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난

얘기는 책을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의 일부 얘기를 들어보자

 

 

 

 

 

시커멓게 언 감자를 먹는 지혜

 

작고한 김일성주석과 만났던 얘기는

책 한 권을 엮을 만큼 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써서 발표한 적은 없다.

 

맨 처음 만났을 때는 다 알려진 바와 같이 문익환 목사 일행과 동석한 자리였다.

접견 장소로 들어가는데 그가 집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체격이 크고 쇳소리가 나는 음성이었다.

김주석은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호남자의 인상이었다.

완전한 백발은 아니고 회색의 반백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썹이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점이었다.

 

원형의 식탁에 모두 둘러앉았는데 주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문목사가, 왼편에 내가 앉고

수행원들도 함께 앉았다.

그는 당시에는 살아 계시던 문목사 노모의 안부를 물었고 용정이나 북간도 시절의 추억도 이야기했다.

문목사가 만주 용정에 살 때 독립운동가들이 그의 집에 수없이 묵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는데,

안중근 의사도 모친이 대접해 드린 일이 있다고 했다.

 

김주석도 만주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항일군들과 연대할 때에 중국인 부락을 지나다가

군량을 보급 받거나 숙박하고 나서 돈이 없으면 간단한 차용증을 써주고

'조선 인민혁명군 김사령’이라는 글을 남기곤 하였는데, 중국 혁명 이후에 옛날 지주들을 척결하면서

김사령의 차용증을 지닌 지주들은 거의 다 사면했다는 말이 있더라고, 중국 정부의 간부들 가운데서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주은래가 전하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특히 옛날 중국의 시 속에서나 '꺼우리'라는 만주 지역 사람들의 성씨에도 나타나 듯이,

만주는 고구려의 옛 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의 서안을 비롯한 예전 고구려 땅에서는 남에서 '식혜'라고 하는 감주를 담가 먹는다는데

등소평이 감주를 썩 좋아한다면서, 그 너르고 기름진 땅을 우리 조상들이 국토로서 보존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였다.

 

그렇지만 함경북도 일대에는 한때 여진족이 살았다고 하면서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라는 여진 말이며, 주을 온천의 주을 역시 '뜨거운 물'이라는 여진말이라고,

인민들 중에 도 예전 여진의 성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어서 모두 우리식으로 고쳐주었다고도 말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느닷없이 주석님 어머님이 전도 부인이 아니셨느냐고 묻자 그는 잘 못들었다는

시늉으로 귓 가에 손을 갖다 대며 되묻고 나서 측근이 모친께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았느냐'는

말씀이라고 설명해주자 웃으면서 대 답했다.

“우리 오마니는 살기 힘드시니까 교회에 가서 주로 주무셨다 .”

 

사실 주석의 외조부는 장로교의 목사였고 외삼촌은 장로였으며 부친도 장로교단 소속인 숭실학교를

다녔고, '강반석' 이라는 모친의 성명도 ‘베델'이라는 세례명에서 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나도 일찍이 개화한 집안 분위기를 아는 터고, 당시 이북의 개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게 흔한 일이었다.

김주석의 부친 김형직은 교회식의 야학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을 모으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러시아 혁명과 신문물을 접하면서 무산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운동에

눈뜨게 되는데, 그때가 아마도 어린 김성주와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만주로 떠날 때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북선 지방의 근대 주의자가 마르크시스트와 크리스천의 두 얼굴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나는 그뒤에도, 이미 그처럼 작고했지만 당시에는 중국 에 망명중이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공

부처와 만찬을 함께한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점심을 함께한 적이 몇 번 더 있었다.

 

공식적인 만찬자리에서 김주석은 언제나 활달하게 좌중에게 음식을 권하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음식은 한식 과 중식이 서로 적당히 어우러진 듯한 정식이 코스로 나오 곤 했다.

만찬 술은 인삼주이거나 백두산 들쭉술이었으며 그중에서도 김주석은 15도짜리 들쭉술을 좋아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들쭉술을 좋아해서 열두 상자나 비행기 편에 실어 보냈다고 했다.

들쭉은 제주도의 먹구슬 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일종의 들딸기라고 하는데, 고원 지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요즘에는 남에서도 북한산 들쭉술을 먹을 수 있지만 한정된 야생의 열매로 그 많은 물량을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 혼합주로 맛을 낸 것이 분명하다.

진품 들쭉술은 약간 쌉싸름하고 조금 떫은 것이 진한 적포도주 비슷하면서도 매우 향기롭다.

그는 전에는 담배를 하 루에 두 갑씩 피웠지만 주위에서 하도 말려서 겨우 끊었다고 했다.

점심 뒤에 한 시간씩 집무실 옆의 방에서 오침을 한다고도 말했다.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어느 점심은 매우 소박했다.

작은 메추리 다리를 몇 개 먹고 나서 국수가 나왔다.

주석은 국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두 끼만 국수를 먹어도 곧 질린다고 하지만,

자기는 한 열흘은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국수를 담은 유리대접을 내려다보니 면이 그야말로 새까만 색이었다.

콩물국수인 셈인데 하얀 콩물에 검은 국수가 잠겨 있는 모양이 이색적이었다.

 

주석이 다른 날처럼 음식 설명을 내게 해주었다.

“이거이 언 감자국수라고 하는 거요. 일전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가 왔을 때, 독일에는

감자 음식이 많은 줄 아는데 이렇게 조리하는 방법을 아느냐고 했더니, 언감자로 조리하는 건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을 거라고 하더군"

 

거무튀튀한 '언 감자국수'의 면발은 차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언 감자를 갈아서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아서는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

위에 는 검은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김 주석이 그 음식의 유래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할 때에 인민들이 많 이 도와주었소.

화전하는 인민들도 저이 먹을 것이 없는데도 우리가 지나는 산길에다 표를 해두고

감자를 묻어놓군 합네다.

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감자를 파내면 시꺼멓게 얼어서 돌덩이야.

근거지루 짊어지구 가두, 언 감자는 구워도 못 먹고 삶아도 못 먹어요.

 

그 때 왜놈들 청야 작전이 철저해서 보급선을 멀리서 차단하고 있댔어.

얼어죽거나 굶어죽고 남은 빨치산들을 토벌하겠다는 소리요.

인민들이 준 것을 버려서는 안 된다구 그때 함경도 출신 동무가 그걸 우려내서 국수 만드는 법을

생각 해냈소. 가난한 인민들은 다 살아갈 궁리를 하는 지혜가 있소.

맹물에다 소금만 넣고 끓인 국수가 어찌나 맛이 있던 지”

 

나중에 뉴욕에서 나는 우연히 개마고원'이라는 냉면집에서 이 국수의 조리법을 듣게 되었다.

아는 사람에게 듣기로는 그 집의 물김치가 기가 막히게 시원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가보니 북청에서 피난 나왔다가 미국 으로 이민했다는 사람네 집이었다.

과연 물김치가 일품이 었다.

 

무는 보통 물김치처럼 나박썰기가 아니라 길쭉길쭉하고 얇게 썰었고

배춧잎도 그만한 길이로 썰었으며 오이 쪽이 간간이 떠 있었다.

얇게 채를 썬 밤, 대추, 사과, 배, 쪽파 등속의 건더기가 알맞게 섞였고 역시 김칫국물이 한 대접이 었다.

고춧가루를 체에 걸러서 탔는지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중에 뉴욕에 왔던 한시해 부부장에게서 들으니

진짜 개마고원 김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의 할머니가 팔십이 다 된 분인데 언 감자국수'를 알고 있었다.

함북 지방의 화전민들이 곧잘 해먹는다는 것이다.

언 감자를 강판에 갈아 체에다 녹말을 내리는 것은 감자국수 해먹는거나 다를 바가 없다.

반죽을 하여 국수틀 에 넣고 끓는 물에 국수를 뺀다.

국수를 찬물에 헹굴 적에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끈기를 씻어내야 찰기가 더 좋다고 한다.

 

콩물 내는 것은, 물에 담갔다가 위로 뜨는 콩을 버리고 골라내어 비린 맛이 가실 때까지 끓이다가

설컹할 적에 건진다.

그래야만 콩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

믹서에 갈 적 에는 물을 조금 붓거나 편리한 대로 두유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

콩국의 맛을 내려면 땅콩이나 잣을 갈아서 넣어도 좋고 들깨나 참깨도 좋다.

 

검은 참깨를 뿌리고 위에다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 먹는다.

함경도 산야의 들갓은 길이가 짤막하고 줄기도 여리다.

여기 갓김치는 전라도식으로 젓갈을 전혀 쓰지 않아서 깊은 맛은 없는 대신에 쌉쌀하고

향긋한 갓의 냄새가 싱싱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