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거목이 쓰러졌다.
80년 대 초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활동의 사진전 등을 통해 광주민주화 활동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민주화 투쟁에 관심을 가진 내가 민주화 운동 데모 물결에 동참한 그 시절, 투쟁본부의 중심에는 항상 이해찬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뿌리는 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이며 그 과정에 내가 동참한 사실을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 기획의 중심에 이해찬이 있었으며, 그의 사상과 실천의지에 알게 모르게 지지하고 행동했다는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자평한다.
책의 내용은 후기애 유시민 작가가 공적인 인간 이해찬에 대해 너무 잘 정리하였기에 덧붙일 말이 없다.
다만 책을 들자마자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쉬이 읽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용에 있는 사건, 사고 에 얽힌 사람들이 대부분 내가 아는 인물들이라 그때 그일이 왜 일어났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기에 더욱 흥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혜택의 많은 부분을 정치인 이해찬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찬 회고록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이 떠오른다.
원칙 정도라는 두 정치인의 공적마인드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가 후기에 쓴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이란 제목의 발문 전문을 옮긴다.
“책의 형식은 '회고록'인데 내용은 역사 기록'에 가깝다. 글쓴이 이해찬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고 행한 일들 가운데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을 추려 말했고 사실에 대한 평가는 가끔씩 간략하게 덧붙였다. 개인적 감정 표현을 최대한 절제 한 탓에 마치 『조선왕조실록』 비슷한 글을 읽은 느낌이다. 시골 면장댁 아들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일화조차 '역사 기록자 이해찬'을 알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적었다. 한마디로 이해찬답다. 내가 43년 동안 보았던 그대로, 이번에도 군더더기 없이 말했다.
제목도 이해찬답다.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은 예나 지금이나 공적(public)인 사람이다. 스무 살의 꿈조차 사적 (private) 욕망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에 들어간 1971년부터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까지의 꿈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였다.
다음 해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정치를 시작할 때 '민주적 국민정당건설 이라는 꿈 하나를 더했다. 첫 번째 꿈은 거의 다 이루었다. 그러나 두 번째 꿈은 아직 미완성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해찬은 자신이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꿈이 모여 역사가 되었던 경위를 증언 할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즐겨 부르셨기에 유고집 제목이 되었던 동요를 떠올렸다. 이 책의 제목을 물방울 연대기 나 '냇물 원정대'라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해찬은 충 청남도 청양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물방울 하나였을 뿐이다. 그 물방울은 스무살에 같은 꿈을 꾸는 다른 물방울들을 만나 작은 냇 물을 이루었다. 냇물은 다른 냇물들과 뒤섞여 거센 강물이 되었고, 철옹성 같았던 군부독재를 무너뜨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 다.
1부에서 저자는 고되고 험난했던 그 여정에서 보고 겪고 했던 일을 증언했다. 나도 여정의 일부를 나누었기에 함께 부딪치고 깨지고 굴렀던 다른 물방울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물방울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는지도 생각했다.
글쓴이는 아주 못된 짓을 한 사람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누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움부터 미안함, 고마 움, 배신감, 미움까지 온갖 감정이 따라왔다.
두 번째 꿈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다음 세대에 넘겼다.
.'정당 개혁' 또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의 꿈은 이해찬의 철학을 집약해 보여 준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 다. (173쪽) 내가 이 책에서 본 가장 멋진 문장이다. 사회사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일찍이 마음에 새겼다는 이 명제는 이해찬의 35년 정치 인생을 큰 틀에서 결정지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25년 동안 민주화를 꿈꾸였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프랑스대혁명 미국독 립혁명을 포함한 서구 민주주의 역사와 러시아•중국 등의 사회주 의 혁명사를 공부했다. 지향할 가치를 탐색하고 성공할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해찬은 다른 나라 역사에서 한국 사회를 바꿀 방법을 찾지 않았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웠지만 목표와 방법을 찾을 때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6월항쟁 때 민통련이 전국 동시다발 시위. 대연합전선, 최저 수준의 행동강령이라는 세 원 칙을 세운 것은 다수의 시민운동가들이 이해찬과 같은 철학을 품 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치에 뛰어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정당 또는 진보정당을 창당한 이들과 달리 이해찬은 김대 중 총재가 만든 자유주의정당을 민주적 국민정당'으로 발전시키 는 길을 선택했다. 최대한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는 혁명 노선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개혁 노선을 받아들였다.
어떤 이들은 개량주의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그것을 욕설 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2부와 3부에서 저자는 현실에서 찾은 방법으로 현실을 바꾼 여러 일들을 회고했다.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로서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행정을 개선하고 국가권력의 기능과 작동 방식을 변경한 사례들이다. 안기부 특활비 적발, 안면도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비밀 행정 폭로, 서울시 행정 3개년 계획 수립, 교원 정년 단축, 대학입시 개혁, BK21 사업 시행, 사립대분규 해결, 학교 촌지 추방, 세종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 사선폐기물처리장 부지 확정.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협상 타결 등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할 뜻을 가진 사람 이라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아주 많다. 뼈대만 추려 담담하게 이야 기했기에 그리 큰 일이 아니었던 것 같겠지만, 당시의 언론 보도를 검색하면서 읽으면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2부와 3부에 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당 개혁과 관련 해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내용도 적지 않다. 이해찬은 일곱 번 국 회의원 선거에 나가서 일곱번 이겼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적 이 없고 선거비용이나 정치자금 문제로 말썽이 난 일도 없었다. 우연이 아니다. 그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두 번째 꿈을 한 순간도 내려놓지 않았고 그 꿈을 품은 정치인답게 행동했다. 그런 데 그런 그가 평화민주당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이르기까지 35년 정 치를 하면서 세 번 탈당한 이력이 있다. 모두가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꿈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1991년 평화민주당 탈당은 중앙당의 서울시의회 후보 돈 공 천' 의혹 때문이었는데 노무현 의원의 지원 덕분에 겨우 통합 야당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범한 오류였다고 자평한 사건이다. 정동영 후보가 대선에서 참패하고 손학규 대표 체제가 들어선 2008년 두 번째로 탈당해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1년 국민의 명령' 운동을 통해 민주당에 돌아왔다. 2016년 총선 때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른바 '정무적 판단'으로 공천에 서 탈락시키자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했고 추미애 대표취임 후 복당했다.
정당 개혁은 정당의 지배구조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민주화를 시작한 1987년 당시 여야의 네 주요 정당 들은 1노3김'이 지배했다. 그들은 저마다 특정 지역에서 절대적 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 힘으로 당의 노선, 인사, 공직 후보 공천을 좌우했다. 민주주의 지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조차 자신이 이끄는 정당 안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속 정당의 도움을 받아 정치를 한 게 아니라 정당을 손수 만들고 운영하는 모든 부담을 짊어진 상태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남북 화해의 시대를 열었으며 복지국가의 주춧돌을 놓았다. 정당 개혁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걸출한 개인기와 카리스마로 절대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한 민주당은 공화정으로 이행할 수 없었다.
민주당의 개혁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와 정치 인생이 막바지 에 들어선 2002년 벽두의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에서 출발했다. 노무현 후보와 노사모는 유력한 정치인들의 계파간 담합으로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던 '귀족정' 또는 '과두제'의 흐름을 깨뜨리고 민주 당을 공화정의 단계로 밀어 올렸다. 이해찬은 그 파도를 타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했다.
2008년과 2016년 탈당은 민주당이 '귀족정' 또는 '과두정'으로 퇴 행해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을 당대표로 세우는 등 정치적 정체성을 상실한 것을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3부 후반부에서 이해찬은 정치 인생 막바지에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의 꿈을 거의 다 실현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민주당의 정책 노선과 정당 개혁 정신에 부합하는 후보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2018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가 되었다. 공직선거에 서는 매번 이겼지만 당직 선거에서는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사실상 처음으로 거둔 당직 선거 승리였다. 이해찬 대표는 문재인 대 통령이 당대표 시절 추진했던 정당 개혁을 이어받았다. 시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편리하게 당에 들어와 당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당대표이면서도 개인적으로 가까운 정치인에게 일절 공천 특혜를 주지 않았고 비례대표 추천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일부 전략공천 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경선을 원칙으 로 삼아 후보를 선출했다. 현역의원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 다. 민주당의 역사에서 공천 잡음이 전혀 없었던 총선은 처음이었다. 민주당은 코로나19 대책을 비롯한 당의 정책을 분명하게 선보 여 지지율을 올렸고, 결국 비례연합정당 당선자를 포함해 180석을 얻는 역사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영남 지역의 득표율도 어느 때보 다 높았다. 본인은 출마하지 않았지만 21대 총선은 명백히 이해찬 의 철학과 노선과 원칙을 각인한 선거였다.
2002년 대통령후보 국민참여경선으로 출발한 민주당의 개혁은 기나긴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권리당원 투표, 대의원 투표,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합쳐 이재명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한 2022년 8월 전당대회는 민주적 전국 정당인 민주당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권리당원의 수가 충분히 많기 때문에 이젠 어느 정치인도 개인의 야심을 위해 당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 청년세대 와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 민주당은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는 국민 정당에 매우 가깝게 다가섰다. 몇 가지 문제는 남아 있다. 대의원에게 일반 권리당원에 비해 지나치게 큰 의사결정권을 부여한 당 현당규는 낡은 귀족정' 문화의 마지막 잔재라고 할 수 있다. 당 운영에 당원의 뜻을 적극 반영하는 데 대한 국회의원들의 저항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직 선거나 공직 후보 경선에서 반칙을 저지르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행태와 문화도 일부 살아 있다. 그런 문제를 다 해소함으로써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완성하는 과 제는 다음 세대 정치인과 당원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이해찬은 그만하면 할 일을 충분히 했다고 나는 믿는다.
학생운동 선후배, 국회의원과 보좌관,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살아온 세월 동안 나는 이해찬을 인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으로 여겼다. 기질이 아주 다른데도 우리는 쉽게 의기투합하곤 했다. 나도 대한민국 민주화와 민주적 전국 정당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찬처럼 그 꿈을 위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 불태우지는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면 내 가 본 사람 가운데 이해찬만큼 철저하게 사사로운 욕망을 억누르 면서 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이는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를 응원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내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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