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의 위대한 저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읽던 중 러스킨이 쓴 드로잉에 관한 책이 있음을 알게 됐다.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영국의 저명한 예술평론가이자 사회비평가인데 그림이나 드로잉에도 조예가 깊었던 모양이다.
본문에는 돌, 나뭇잎, 하늘, 들판 등 자연물에 대한 드로잉의 기본을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용 중에 드로잉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1. 사물과 사물의 연관관계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만을 그려서는 안 된다. 혹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린다는 자세도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릴 만한 것이 오직 그것뿐이라면 그려도 좋다. 당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그릴 때는 벽돌로 쌓아올린 벽이나 철제 울타리, 자갈이 깔린 길, 온실, 산울타리 등을 빠트리지 말고 정확히 그려야 한다. 당신은 아름답고 완벽한 드로잉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런 노력은 도리어 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 좀 더 근사해 보여야 한다며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유일한 문제는 드로잉이 얼마나 '정확'한가, 바로 그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정확히 드로잉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특별히 할 일 없이 친구 집이나 당신 집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다면 눈에 띄는 아무것이나 골라 드로잉을 시작해보자. 물론 연습 드로잉이다. 불쏘시개나 카펫의 패턴도 좋다. 연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당신이 카펫이나 익숙한 부지깽이 또는 집게가 마음에 들어 그리는 것도, 친구를 기쁘게 해주려고 그의 거실을 그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의 드로잉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지 마라. 당신이 초보자라고 가정하고서 조언하는 것이다. 언젠가 모든 이가 당신의 작품을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길 날이 올 것이다. 당신의 작품이 가치 있는 것임을 알 때까지(가치 있는 작품이 될 때면 절로 깨 달을 것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도록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드로잉을 선물로 달라고 하면 대신 고체물감 몇 개와 브리스폴 판지를 선물하라. 브리스톨 판지에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 보내는 것보다 종이와 물감을 보내는 쪽이 선물로는 훨씬 적절하다.
이런 규칙을 정해놓은 이유는 당신이 드로잉을 하면서 그저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 표면이 매끄럽고 반짝이는 것은 절대 그려서는 안 된다. 특히 형태가 복잡한 것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금관악기나 커튼 장식, 샹들리에, 쟁반, 유리잔, 금속 장식품을 그리는 것은 되도록 피한다. 가구에 달린 번쩍이는 금속 손잡이가 마음에 든다면 그걸 그려라. 하지만 드로잉에서 실제와 똑같아 보이지 않더라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광이 안나는 것을 고르면 된다.
3. 형태가 단순하고 정갈한 사물은 그리지 마라. 고되기만 할 뿐 그려놓고 나면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 가능한 한 거칠고 낡고 지저분한 것을 골라라. 예를 들어 템스 강에 떠가는 나룻배나 텅 빈 석탄 바지선이 썰물에 떠밀려 강둑에 걸쳐 있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보통 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라도 막상 그려보면 생각보다 훌륭하다.
4. 다른 사물에 가려진 것은 그리지 않은 편이 낫다. 오두막을 그리려하면, 그 앞에 가느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강 옆에는 나무들이 서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거리에 따라 가지의 크기와 수를 달리 그려준다. 이것을 재현하기란 매우 힘들다. 나무가 '거기' 에 있을지라도 그걸 잘라내서는 안 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하나의 완전한 덩어리로 사물을 그려야겠지만 마치 그물처럼 얼 기설기 얽혀 있는 것을 그려서는 안 된다. 오두막 앞보다는 오두막 '옆'에 나무가 있는 것이 좋다. 이 경우에는 거친 잡목이나 형태 분간 이 어려운 것보다는 부드럽고 둥그스름한 모양의 푸른 나무가 그리기 훨씬 수월하다.
5. 울타리로 구획이 된 시골 풍경은 피하는 것이 좋다. 멀리 소떼가 풀을 뜯고 있고 군데군데 나무들이 솟아 있으며 울타리와 농경 지 때문에 조각 이불보처럼 보이는 영국의 시골 풍경이야말로 회화 적인 요소와는 가장 거리가 멀다. 게다가 이런 풍경은 제대로 그려 내기도 어렵다.
존 러스킨이 초보자에게 조안하는 것 중, 함부로 습작을 선물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벌써 이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스케치 한 몇 점을 본 지인이 좋다면서 달라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주고 말았다. 스케치를 받는 지인은 그림은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며 재미삼아 몇 천원을 건네 주었다. 모든게 그냥 재미로 한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낯 가지러운 일이다.
이 책은 그림을 전공할 학도나 작가의 꿈을 가지고 공부하는 초보자가 보면 좋을 듯 하다. 내가 보기엔 나한테는 너무 세밀하게 깊이있는 내용이라 결이 맞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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