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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잡동사니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읽고

by bluesky0321 2024. 10. 16.


   작년 11월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받고 활동지원 업무를 시작한지 만 10개월이 되었다. 내가 활동 지원하는 태훈(가명)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만 13세의 남아로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반이 있어 일반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반이 갖춰진 데가 없다. 그래서 장애인을 전담 교육하는 특수교육기관에 입학한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하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나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각인된 이미지와는 달리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증상은 천차만별이다. 태훈이는 다른 사람과의 눈맞춤을 싫어하고 말하기를 싫어하며 혼자 있길 좋아한다. 그래서 부모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과의 소통이 매우 어렵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거나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을 때는 소리를 치거나 머리를 벽에 쿵쿵 박거나 누워서 뒹구는 상동행동을 한다.
  
업무를 하면서 태훈이가 상동행동을 할 때마다 이를 매일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아픈 심정이 느껴진다. 부모는 부모대로 태훈이는 태훈이대로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탁탁 치면서 ‘내 머리가 이상해! 내 머리가 이상해’라고 소리치던 아이가 생각난다. 태훈이도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머리를 치며 소리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안나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의 종류와 관계없이 장애인 또는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에 이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비협조적인지 알 수 있다.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은 정신적인 어려움과 함께 경제적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 쉽게 무너지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곤 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촘촘한 사회복지 정책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이다.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수는 약 264만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장애 출현율은 약 5.1%이다. 이는 2021년 기준으로 독일 21.8%, 영국 21%, 프랑스 19%인 주요 선진국의 장애 출현율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안나의 경우에도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환자의 증상이 양극성 장애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사유로 불인정되었다고 한다. 미국, 영국 등 여러 선진국의 장애등록 사례를 첨부하여 재 신청했지만 결과는 또 불인정이었다. 안나와 같이 장애판정 심사에서 탈락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준 장애인을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의 장애 출현율도 최소한 10%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전체인구의 5% 이상은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애 출현율 20%가 넘는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장애인 발생의 절대적인 숫자가 많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장애의 범위를 매우 폭넓게 인정하여 사회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지정책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임산부도 일시적인 장애인으로 인정하여 사회적으로 지원을 받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작년에 은퇴기념으로 유럽 3개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하는 도중 미술관이나 놀이공원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지만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장애인 관련 교육을 받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장소나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장애인들이 안정하게 다닐 수 있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과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이라고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정상’이라는 말에는 매우 폭력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오랫동안 사회가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개념으로 ‘정상’이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인 것이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그녀에게”라는 영화를 봤다. 기자생활을 하다가 첫 아이 출산과 함께 10년째 장애인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씨의 실화를 담은 내용이다. 장애인 아이를 가진 선배 엄마로써 후배기자가 자신의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다며 좌절과 고통에 빠져 있을 때 함께 이겨내자며 손을 내밀어 준다. 극 중에서 엄마는 장애인은 길장(長), 사랑애(愛), 사람인(人)으로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장애인을 둔 가족의 애환과 고충을 너무나 잘 표현하여 영화가 끝난 후에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내용들이 고스란히 가슴 속에 다가왔다. 장애인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안나가 겪고 있는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한 편이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신건강의 중요성과 장애지원 정책에 대한 불합리성 등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장애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개선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중 유전, 염색체 이상 등의 선천적인 장애는 13.3%에 불과하며 약 88%는 질병 및 사고로 인한 후천적으로 발생한 장애이다. 이는 비장애인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이해 및 제도개선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2024. 0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