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시 모음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by bluesky0321 2021. 7. 29.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 붙여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며 죽을 수 없었다

우리는 코피가 흐르도록 사랑하고

코피가 멈출 때까지 사랑하였다

바다가 아주 멀리 있었으므로

바다 쪽 그 집 벽을 허물어 바다를 쌓았고

강이 멀리 흘러나갔으므로

우리의 살을 베어내 나뭇잎처럼

강의 환한 입구로 띄우던 시절

별의 강줄기 별의

어두운 바다로 흘러가 사라지는 새벽

그 시절은 내가 죽어

어떤 전생으로 떠돌 것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 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

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

내려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릴는지

 

 

 

 

 

 

 

'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운사에서  (0) 2021.10.15
선운사에서 (김영미)  (0) 2021.07.22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0)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