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도서 감상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by bluesky0321 2013. 11. 27.

네가 어떠한 삶을 살던 난 너를 응원할 것이다

딸에게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담은

공지영의 책이후 실로 오랜만에 그녀의 소설을 맞았다.

 

대선 이전 여의도광장으로 시국선언장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혹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일념으로 살아 온 나날이 물거품되던 날

허탈한 심신이 더 망가지기 전에

다시 펜을 잡은 그녀의 작품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몇차례 벙커를 찾고 봉하마을을 찾는 동안

공지영은 왜관과 미국 뉴튼시를 오가며

이 글을 썼다.

 

이 시대의 암울한 정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공지영의 글은 친구들로부터

좌빨이라 불리는 나의 정서에 잘 맞는 것 같다.

 

권력을 나누어 향유하는 공범들이 벌이는 이 세대의

추악한 작태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하는

공지영의 소설들은 그래서 가슴에 깊이 각인된다.

 

침묵은 단순한 고요, 단순한 소음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적극적인 듣기이며,

소리를 넘어선 소리, 감각을 넘어선 감각을

위해 침묵은 필연이라 한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입을 닫고 귀를 열어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나무 가지에 쌓였던 눈꽃이 푸수수 흩어지고

이파리 없는 가지들이 바람에 가만히 흔들리는 소리

깊은 땅 속 고물거리는 벌레들이 가만히 몸을 뒤척이는 소리

나무뿌리들이 아주 깊은 곳으로 조금식 가느다란 발을 뻗는 소리

내 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지구가 자전하면서 내는 마찰음인가?

 

침묵하면 많은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 때 하늘이 열리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같은 것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신부를 꿈꾸는 젊은 수사와

소희와의 사랑

미카엘과 안젤로의 죽음

신부님들의 우연과도 같은 기막히 사연들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요한은 소희에게서 사랑해 봤냐는 돌직구에서

무의식에 구겨져 저장되었던 기억이

내의식으로 인화되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후로도 얼마동안 그래서

그녀는 내게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대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싯구가 있다.

그래서 아무 의미없던 소희가 비로소 요한에게 꽃이 되었다.

 

태어나기 전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의 준비기간을 주지만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은 말한다.

 

이 소설에서 미카엘과 안젤로는

불의의 교통사고 삶을 마감한다.

아무런 준비없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지난 주말은 소설 속의 이야기와 같았다

아무 예고없는 죽음이 주변에 다가왔다.

한 친구의 삶이 그렇게 마감되었다.

 

내일 한잔하자던 약속

다음 주에 산에 가자던 약속

가족과 영원히 행복하자던 약속

회사가 좋아질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던 약속

모든 약속을 접어두고 홀로 떠났다.

마치 예정된 것 처럼

 

24시간의 애도시간을 마치자 그는 한 줌의 재로 나왔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처인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한 친구를 보내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 소설을 내리 읽었다.

그래서 요한의 심정도 소희의 어쩔 수 없는 선택도

미카엘, 안젤로의 죽음도

전쟁통에 온갖 악행을 다하는 적군의 심경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나도 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