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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감상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프리다 칼로"를 생각하며

by bluesky0321 2018. 8. 16.


프리다 칼로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혁명가이다.

멕시코의 우표, 화폐 등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어느정도 

멕시코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인지 짐작이 될 듯~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순전이 프리다 칼로의 "나의 탄생"이란 작품 때문이다.

보는 순간 너무나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에 빠져들고 이런 작품을 그린 화가에 대한 글이라 책 내용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책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찾아보니

나의 탐생만큼이나 격정적이고 정열적이며 충격적이고 

혁명가적인 삶을 산 화가였다.

순간 프리다 칼로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프리다 칼로 (1907~1954)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 전통문화를 결합시킨 화풍

독일인 아버지와 스페인+인디오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어머니는 멕시코 청년 공산당원으로 매우 강열한 성격

엄마를 닮음


6세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젊

18새때 전차사고로 큰 부상

이 사고가 프리다 칼로의 전생을 고통으로 감싸고 있음

사고 회복에 2년이상 걸리며 의사꿈을 접고 화가의 길로 접어듦





병원에 입원했을 때 머리 위에 거울을 달고 자화상을 그림

"나는 자주 혼자여서,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에 나를 그린다"

프라다의 말이다.





1928년 

멕시코 공산당원에 가입하고, 평생 사랑이자 고통이자, 연인이며 동시에 적이기도 한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다

프리다의 그림을 본 디에고는

"예기치 않은 에너지, 특색있고 명쾌한 인물표현, 진정한 엄정함

이 소녀는 진정한 예술가이다"라고 평했다.


프리다는 21세 때 21세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다

디에고는 세번째 결혼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라 말했다





디에고의 외도로 가정은 편하지 않았다.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디에고는 바람을 폈다.

결국 이혼했으나, 다시 재결합하여 평생 함께 살았다.




프리다도 외도를 했다

"레온 트로츠키에게 바치는 자화상"에 사랑을 담아 선물했는데

이 그림이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비평가 눈에 들면서

1938~1939년에 뉴욕과 파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프리다 칼로는 사고로 인한 휴유증으로 여러번

대 수술을 받았다

그러한 것이 그녀의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실제 보조기를 차고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이다






1953년 그녀의 최후가 다가온 걸 눈치챈 디에고는

친구들과  전시회를 개최한다

프리다는 침대에 누운 채 전시회에 참석했다.


아래 집에 프리다가 태어나고 죽은 집인데

디에고는 프리다 사후에 이 집을 정부에 기증하여

'프리다 칼로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프리다 칼로는 

1954년 47세로 사망했다

그녀는 마지막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 미술관 홈페이지








프리다 칼로 자화상




프리다 칼로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본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 상의 이미지를 캐쳐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아래 책 내용에 설명이 있다















이 그림은 디에고 바람을 핀 상대인 "나타샤 켈만"의

초상화이다.

늘씬하면서 아주 이쁘게 그렸다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가 그린 "나타샤 켈만"의 초상화이다

같은 사람인데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프라다의 질투가 작동했을까?

디에고의 애정이 담겼을까?

프리다와 나타샤는 나중에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가 있었나 보다

전시 포스트 사진이 있어 스크랩 했다.




박연준의 책 덕분에 

프리다 칼로의 불꽃같은 삶, 그리고 작품세계에 빠져 보았다

멕시코의 태양과 같은 정열

내면의 아픔을 캔버스에 펼친 프리다의 삶에 경외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