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감상하면서
대체적으로 액자에 관심을 두진 않는다.
서양회화의 경우, 대부분 럭셔리한 르네상스 풍의
우아한 액자들이라 액자란 다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화의 변천사만큼이나 액자에 대한 변천도 이채롭다.
고흐의 경우 자신의 그림은 어떤 색상의 액자에
넣어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한 편지가 있을 정도로
액자에도 화가들이 많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액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지은이란 작가가 풀어냈다.
이지은작가는 미술사학자 이면서 장식미술 감정사이기도 하다.
소더비, 크리스티, 타잔 경매장의 인턴생활을 통해
옛물건들이 어떻게 가치평가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환경이 변할때마다
가장 먼저 바뀌는 사물이다.
중세시대의 건트 제단화처럼 그림은 변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는 자, 그림을 소유하는 자에 따라
그리고 그림이 걸려있는 장소에 따라 액자는 끊임없이 바뀐다.
결국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의 결과물이다.
사진은 켄트제단화의 이브와 아담의 한 장면이다.
실물사이즈 나체화는 19세게꺼지 금기시된 장면이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 때문에 미술자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빛과 영광의 뒤안길
신의 세계로 가는 길 "겐트 제단화"
좌측 그림은 제단화를 연 모습이며,
오른쪽은 제단화를 닫은 모습이다.
겐트 제단화는 얀 반 에이크 작품으로
1432년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그림은 벨기에에 있는 성 바프 대성당에 걸려있다.
겐트제단화를 주문한 요스 베이트 부부가
제단화를 닫았을 때 양쪽에 그려져 있다
겐트 제단화는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
우선 누가 그린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수많은 서적 및 위키피다아에서 당연하다는 듯
반에이크 형제의 작품이라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크로노그램 읽는 법
액자 하단부에 이 그림의 연대를 표시한 것으로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게 수식화 되어 있다.
루이샤를 오귀스트 쿠데 작
건축가 페르시에와 퐁텐의 안내로 루브르를 방문하는
나폴레옹 1세
(캔브셍 유채, 177x135cm, 1833년 루브르박물관, 파리)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액자
17세기식 드라마,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루브르 박물관 의 리슐리외관 2층 18번 방의 이름은
"메디시스 갤러리"이다.
이곳에는 루벤스가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를 묘사한
24점의 연작이 걸려있다.
마리 드 메디시스는 앙리 4세의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어머니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치며 현란한 정치편력을 이어간 여인이다.
이 연작은 여왕의 탄생부터 앙리 4세의 죽을, 섭정,
루이 13세의 집권 등 여왕의 일생을 시대 순으로 그렸다
24점의 작품들은 높이가 3미터 94센티나 되는 대작들이다.
거대한 사이즈의 그림에 기가 눌린 탓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유난히 지쳐 보인다고 한다.
솔직히 이런 그림들은 봐도 비슷비슷하여 큰 경외감은 없다
마리 드 메디시스 시대의 뤽상부르 궁전 판화 작품
(작자 미상, 18세기, 장식미술박물관, 파리)
뤽상부르 궁전은 ㅁ 자 모양이다
이 중 긴 양팔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갤러리이다.
갤러리는 17세기 대귀족의 저택이나 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현대인에게 갤러리는 양쪽으로 창이 난 쓸데없는
긴 복도에 불과하지만 17세기인들에게 갤러리란 손님을 접대하는
연회장이자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보통 양면 대칭으로 난 창문으로는 잘 가꾼 안뜰과 바깥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고, 내부는 벽화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성년이 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에도
왕실 고문 수장직을 꿰차고 실권은 휘두르는 어머니,
매디시스에 견디지 못한 루이 13세는 1617년 전격적으로
쿠테타를 감행한다.
우선 마리 드 메디시스의 최측근인 콘치노 콘치니를 살해하고
여왕을 파리근교 블루아 성에 유배를 시켰다.
그러나 마리 드 메디시스는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루이13세의 감시가 소홀해질때 블루아 성을 탈출하여
알굴렘 성에 진을 치고 대치한다
결국 루이 13세는 협상을 택하고 1920년 여왕은 파리로 귀한한다.
이러한 과정을 루벤스에게 24점의 대작을 의뢰한 것이다.
[신들의 조언]
[줄리에에서의 승리]
[궁내부 대신의 사망이후 완전한 화해]
루벤스는 마리 드 메디시스 연작 24점 외 48점의
그림에 대한 대가로 총 6만 리브르를 네번에 나누어 받는 것으로 계약했다.
이 돈의 가치는
당시 마리 드 메디시스 여왕의 궁정 1년 예산이 7만 2천 리브르였다고 하니
6만 리브르는 어느정도의 금액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17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시봉 부에는
당시 재경부 장관의 파리 저택 전체에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1만8천 리브르를 받았으니 루벤스의 대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가장 작고 값비싼 액자
루이 14세의 두 얼국, 브와트 아 포트레
브와트 아 포트레, 세기의 경매에 등장하다.
.작품은 48만 유로에 루브르 박물관에 낙찰되었다.
아래 그림 [콘라트 데트레프 그라프 폰 덴의 초상화]의 오른손
뒤로 보이는 달걀모양의 오브제가 브와트 아 포트레이다.
르댕고트를 입고 있는 루이 14세,
1690년 경,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루이 14세의 브와트 아 포트레
현재 남아 있는 브와트 아 포트레의 대부분은 이처럼
보석이 제거된 상태이다.
결국 브와트 아 포트레를 특별한 물건으로 만들어 준 보석들이
오히려 브와트 아 포트레를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긴 가발을 쓰기 전의 얘된 루이 14세 모습의 초상화
장 프티토 1세, 1658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좌측 사진은 앙리 테르틀랭 작
12살 때의 루이 14세, 1648년, 베르사유 궁전
우측은 발타자르 몽코르네 작
루이 14세, 프랑스의 왕, 종이에 동판, 내셔널 갤러리, 런던
그림 아래 있는 마지막 구절은
"왕은 절애로 어린아이일 수 없다"
루이 14세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루이 14세는 왕을 왕답게 만들어 주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우아하게 기품을 드러낸 두 다리
왕홀을 거꾸로 들어도 권위가 넘치는 단호한 손
절로 경외감이 들게 하는 시선처리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완벽하다고 들 평한다.
루이 14시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원래는 손자이자 스페인의 왕위를 이어받아 펠리페 5세가 되는
앙주공작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주문했던 이 초상화는
원본을 베르사유 아폴론 살롱에 걸어두고
카피본을 만들어 양주공장에게 선물했다.
아폴론 살롱은 왕을 알현코자 할 때 대사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방이었다.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를 만나는 신호탄인 것이다.
이야 생트리고, 왕실복을 입고 있는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
루브르 박물관, 파리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은 초상화를 남긴 왕이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아는 초상화다운 초상화,
즉 루이 14세 신체와 얼굴을 묘사한 초상화는 극소수이다.
루이 14세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그림들은 신화나 역사화이다.
베르사유 벽화는 전부 루이 14세가 아폴론이 되어
천상을 노닐고, 하늘을 나는 마차를 타고 활을 쏘는
헤라클라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위에 것은 장 노크레 작
루이 14ㅔ의 가족들, 베르사유 궁정
아래는 장 바티스트 드 상파뉴 작
두마리의 수탉이 끄는 마차를 탄 메리쿠리우스, 1672년, 베르사유 궁전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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