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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부검뿐인 생 (이정록)

by bluesky0321 2014. 12. 26.

부검뿐인 생

 

 

터미널 뒤 곤달걀집에서
노란 부리를 내민 채 숨을 거둔

어린 병아리를 만났다 털을 뽑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맛소금을 찍을 수가 없었다


곡식 멍석에 달기똥 한 번 갈긴 적 없고
부지깽이 한 대 맞은 적 없는 착한 병아리
,
언제부터 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는 눈망울이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폐가의 우물 속 두레박처럼

그의 눈망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오래 제자리를 에돌았는지, 병아리의
발가락과 눈꺼풀 위에 잔주름이 촘촘했다

하늘 한 번 우러러본 적 없는, 부검뿐인 생


금이 간 창문에는, 그 줄기를 따라
작은 은박지 꽃이 붙여져 있었다

씨앗을 가질 수 있다는 듯, 은박지 꽃잎들이

앞다투어 바래어가고 있었다

 

 

 

 

 

 

 

곤달걀은 부화하다 죽은 계랸을 말한다.

법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이것이 유통되어 술안주로 팔리는 모양이다.

 

부리와 뼈가 생기고 병아리의 형태를 갖춰가다가

원인모를 일에 의해 결국 부화하지 못한 달걀

 

곯은 달걀이란 뜻의 곤달걀이라는 시에서

태어나지 못한 병아리에 대한 애정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