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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프리다 - 셀마 헤이엑 주연

by bluesky0321 2025. 3. 11.

2002년도 제작된 ”프리다 칼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그린 영화 ”프리다“를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다.
요즘은 OTT에 워낙 많은 영상물이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새로이 올라오는 영화들을 제목 혹은 포스터만 보고 관람하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이 나는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미처 내가 못보고 지나친 영화들을 ‘이거 봤어?‘라며 툭 던지는 대화 속에 큰 감동을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국민화가로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친 “프리다 칼로”의 이름이나 그녀의 작품을 한번쯤은 봤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녀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소련의 10월 혁명 주역인 ‘레프 트로츠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멕시코 국내에서 자신의 작품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침대 통째로 차량에 싣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말년에 건강이 지독히 악화되어 자신의 전시회에 조차 걸어서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침대에 누운채 전시회에 참석하는 ‘프리다 칼로’
이 자리에서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는 “그 그림을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전 제 아내를 남편으로서가 아닌 예술가로서 소개하고 싶군요. 그녀의 작품은 강렬하고 부드럽고 강철처럼 강하며, 나비날개처럼 섬세하며, 미소처럼 사랑스럽고, 인생의 쓴맛처럼 혹독합니다. 지금껏 그녀처럼 고뇌의 시를 화폭에 담은 놀라운 화가는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프리다 칼로 작품을 소개한다.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의 전시회에 참석하는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1907.7~1954.7.13)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다리를 절게되었으며, 사춘기 시절 교통사고로 수많은 골절과 철골이 온 몸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어 30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아 지체장애인으로 역경을 이겨낸 불굴의 화가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원래 꿈이었던 법률가의 길 대신 화가의 길을 가기로 하는데 오랜 투병생활 속에 침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한 아버지 덕분이었으며, 이제 실질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멕시코 민중 벽화로 이름이 알려진 “디에고 리베라”를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점을 들고 찾아간다.

여기서 디에고는 프리다의 전혀 새로운 화풍에 놀라며 화가의 길을 가라고 조언한다
결국 두번이나 이혼한 디에고의 청혼을 받아들여 21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1929년 둘은 결혼한다

프리다 칼로의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이 작품은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결혼 초상화로, 그들의 관계와 정체성을 보여준다.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리베라는 서양식 옷을 입어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며, 리베라가 팔레트를 들고 있는 모습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프리다 칼로의 1932년 작품으로 유산 후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했다. "헨리 포드 병원" 또는 "떠 있는 침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로 영화에는 록펠러 재단이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소련의 공산주의자 ‘레온 트로츠키’와 ‘블라디미르 레닌’을 그려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재단이 파괴하고 말았다.

디에고에게 프리다는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한다.

프리다 칼로의 "짧은 머리의 자화상"으로 1940년에 그린 것으로, 그녀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한 후 자신의 심경 변화를 표현한 작품이다
프리다는 22살에 리베라와 결혼하여 10년을 살다 이혼했으나 1년 뒤 리베라의 청혼으로 또 다시 리베라와 결혼하여 죽을때까지 14년을 함께 한다.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노동운동가이며 정치인인 “레프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박해를 피해 멕시코로 망명했을 때, 프리다의 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트로츠키는 1905년 혁명과 10월 혁명, 러시아 내전의 한 가운데 있었으며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여 소련이 건국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1917년부터 1924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할 때까지 소련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1938년 작품 "멕시코의 네 주민"
왼쪽부터 남자, 아이, 임신한 여자, 해골이 묘사되어 있다.
멕시코의 다양한 계층과 삶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배경은 멕시코의 풍경과 건축물을 보여준다.
칼로의 독특한 화풍과 멕시코 문화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은 멕시코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프리다 칼로의 1938년 작품 "물이 내게 준 것"
작품은 욕조 안에서 칼로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졌다. 물 속에 비친 이미지들은 그녀의 삶과 고통, 기억들을 상징하며, 부모님의 결혼식, 멕시코 전통 의상, 해골, 익사한 여성, 화산 폭발, 죽은 새 등이 묘사되어 있다.
(위의 두 그림은 하나의 작품임. 티비화면을 찍은 것이라 분할되었음)

트로츠키가 멕시코에 망명해 있을때 프리다와의 염문설이 있었다. 그 일로 트로츠키 부인과 다툼이 있어 망명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이때 옮긴 장소에서 트로츠키는 암살당하는데 정부는 리베라를 의심하여 프리다를 구금한다.
리베라가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구금은 풀리지만 프리다는 심신이 피폐해진다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프리다" (1939)
이 작품은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이혼 후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자화상이다. 두 명의 프리다는 서로 다른 옷차림과 감정을 나타낸다.
왼쪽의 프리다는 유럽풍 드레스를 입고, 오른쪽의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두 프리다의 심장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왼쪽 프리다는 가위로 탯줄을 자르려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이혼의 고통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상징되며, 프리다 칼로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생전에 최고가로 팔린 작품이기도 하며, 현재 멕시코시티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프리다 칼로의 1944년 작품 "부러진 기둥"
교통사고 후 척추 수술을 받은 후의 고통을 표현했으며, 몸에 박힌 못은 육체적 고통을 상징하며 금이 간 기둥은 부서진 척추를 상징한다. 몸을 고정하는 벨트는 수술 후의 고통을 나타내며 배경의 갈라진 땅은 내면의 고통과 불안감을 표현했다. 돌로레스 올메도 박물관에 소장.

프리다 칼로의 작품 "꿈"(1940)
침대 위에는 해골, 아래에는 칼로 자신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을 표현한 것으로 칼로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개인 소장

프리다 칼로의 "가시 목걸이와 벌새가 있는 자화상"
칼로가 겪었던 고통과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가시 목걸이는 고통과 희생을 상징하며, 벌새는 생명, 희망, 행운을 검은 고양이는 불운과 죽음을 상징한다.
원숭이는 파괴적인 면과 애정을 동시에 상징하며 나뭇잎은 생명과 성장을 상징한다.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말
“떠나는 길 즐겁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길”

내용 중의 그림은 넷플릭스 시청 중 TV 화면을 촬영한 것입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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