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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감상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중국편3, 교하고성 & 고창고성

by bluesky0321 2020. 11. 23.

이번 장은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그리고 베제크리크 석굴의 유럽 열강등의 약탈 등에 대한 내용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장대한 도시 유적지인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비록 제국주의 탐험가들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베제클리크석굴.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많은 유물이 전하는 아스타나 고분군,

서유기에 나오는 전설 속의 화염산,

근대 이슬람 유적인 소공탑,

거기에다 삶의 슬기가 낳은 인공수로인 카레즈,

한없이 이어지는 싱그러운 포도구,

화려한 스카프와 동그란 모자를 쓴 파란 눈의 위구르인의 삶을 보면서

투르판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유산이 주는 의미가 가슴 저미게 다가왔다.

 

나는 실크로드란 길로 나 있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에서 오아시스 도시로 이어가는 점의 연결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통상의 최대 요충지, 투르판

위구르어로 '파인 땅' 또는 낮은 곳'을 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천산산맥 동남쪽의 움푹 파인 분지이다.

 

투르판분지는 약 5만제곱킬로미터로 남한 전체 면적의

절반 정도 된다.

북쪽으로는 천산산맥의 지맥인 해발 4천~5천 미터 되는

보거다(博格達)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투르판분지는 세계에서 유명한 저지대로

분지의 80%가 바다 수면 보다도 낮다.

그중 아이딩(艾丁) 호수의 수면은 -154미터로 사해(死海, 약 -400미터)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낮다.

 

투르판은 카레즈라는 인공수로를 만들어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물을 이용함으로써 풍요를 누려왔다.

예로부터 투르판은 실크로드상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였다

 

 

이오는 오늘날 하미(哈密)라고 부르는 도시로,

감수성에서 신강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한나라 때부터 줄곧 이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원나라, 명나라를 거치면서 하미라고 불리는데 중국 입장에서는

서역으로 들어가는 목구멍, 또는 신강성으로 들어가는 대문으로 일컬어진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실크로드의 역사와 신강성의 지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그 옛날의 이오, 오늘날의 하미가 무수히 등장하며 3천 년 전

청동기시대 이래의 유적지와 불교사원 터, 이슬람사원 등이 소개되어 있어

한번 답사해보았으면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멜론 비슷한 과일인 '하미과(哈密果)'는 바로 이곳 특산물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현재의 하미시는

구시가의 중심부에만 이슬람 분위기의 건물들이 있을 뿐

널찍널찍한 도로망에 현대식 빌딩들이 즐비해 내가 기대하는

옛 이오국의 향기는 맛볼 수 없다고 한다.

 

 

 

쿰타크(庫木塔格)는 위구르어로 '모래산'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투르판 사산(沙山)공원'으로도 불린다.

쿰타크사막으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 사이에 위치하며

그 범위는 남북 40킬로 미터, 동서 62킬로미터에 달한다.

 

동쪽은 돈황의 명사산과 현장법사가

생 끝에 건넜다는 막하연적, 남쪽은 누란국이 있던

로프노르 호수에까지 걸쳐 있다. 

 

 이 쿰타크사막은 두 가지로 이름 높다.

첫째는 선선 시내 중심가에서 불과 1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도심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막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쿰타크에는 '사부진 녹불퇴 인불천(沙不進 緣不退 人不遷)'이라는 말이 전한다.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둘째는 모래 입자가 아주 고와서 바람에 이동하는 유동(流動)사막으로

모래언덕이 바람결 따라 굽이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무한대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쿰타크사막 정상

 

인터넷에서 찾은 쿰타크 모래사장

 

어찌 보면 길게 엎드려 누운

여인의 육체미를 표현한 구상화 같기도 하다.

무작정 바라만 보고 싶고, 한없이 걸어가고도 싶고,

마냥 앉아 있고 싶기만 하다.

 

고운 모래밭에 차마 발자국을 내기 미안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너나없이 한동안 가만히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 모래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깊은 경외심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실크로드에 가면 정말로 이런 사막을 보고 싶었다.

유려한 곡선의 모래언덕과 낙타 방울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사막에는

태초에의 그리움이 서려 있을 것만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 민국은 황무지도 없고,

지평선도 보이지 않고, 사막도 없기 때문에 이처럼 무한대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자연을 경험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쿰타크사막에서의 감동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크로드 답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풍광은 쿰타크사막이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8세기 후반

투르판이 토번(티베트)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그리고 9세기 위구르족이 '천산위구르왕국(고창회골)’을 세웠을때

교하고성엔 다시 백성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칭기즈칸 부대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무너져버렸고 14세 기에는

완전히 버려지기에 이르렀다.

이후 교하고성은 무려 600년이 지나도록 폐허로 방치되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역사 유적지로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에 와서의 일이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 방치됐는데도 교하고성이 옛 성곽도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투르판의 기후 덕분이다.

 

연간 강우량이 16mm에 불과한 굉장히 건조한 날씨 덕분에

흙벽이 무너져 내리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교하고성의 건축 구조는 흙을 쌓아 세운 것이 아니라

지하로 파 내려가면서 공간을 분할한 것이기 때문에

지붕이 흔적 없이 사라졌어도 건물의 뼈대는 유지되어

이 유서 깊은 옛 성곽도시의 모습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오늘날 교하고성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토성(土城)'이자

'세계 유일의 생토(生土) 건축 성곽도시’를 자랑하며

2014년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 것이다.

 

 

 

 

 

 

 

독일의 중앙아시아 탐험대

 

고창고성은 20세기 초 독일 탐험대에 의해 철저히 도굴되었다.

‘그레이트 게임'에 독일이 뛰어든 것이 1902년이고,

이후 1914년 제1차 세 계대전 발발로 중단될 때까지

모두 4차에 걸쳐 탐험이 이루어졌다.

 

스벤 헤딘과 오렐 스타인이 서역남로의 호탄, 누란 등을 파헤쳤던 것에 반해

독일은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를 주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독일의 제1차 '중국령 투르키스탄(신강성)’ 탐험은

유명한 무기상인 크루프(Krupp) 가문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시행되었다.

 

 

 

 

 

 

베제크리크 제 15석굴은 

서원도라고 하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벽화인데

독일 탐험대가 떼내어가 독일에서 1차 대전 때

폭격을 맞아 소실되고 만다.

 

그 내용은 아래 신실크로드라는 NHK 및 중국 CCTV 공동제작된

다큐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