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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롬멜 - 사막의 여우 (Rommel, 2012)

by bluesky0321 2020. 6. 2.

에르빈 롬멜 (Erwin  Rommel, 1891~1944)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가장 유명한 독일군 원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사관학교 교직으로 지내다

나치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나치당에 가입하여

아돌프 히틀러의 경호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기갑사단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1940년 프랑스 전선에서 아르덴 숲을 돌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남겼다.

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어

능수능란하게 지휘하여 적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막의 여우(The Desert Fox)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42년 투브루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원수계급으로 승진한다.

그러나 12월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패배한 뒤 그의 명성은 사라져간다.

1943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지휘하다가 프랑스 서부전선의 영불해협 방위를 맡았으나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저지하지 못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롬멜은

'이 전쟁은 더이상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히틀러가 현재 전쟁상황을 직시할 자세도,

연합군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는 불가피한 결론을 내릴 준비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총통에 대한 군인으로서의 충성과 맹세냐'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냐'를 놓고 기로에 서게 된다.

 

1944년 7월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전투가 한참 치열할 때, 롬멜의 전용차가 영국군 전투기의 저공비행 습격을 받아

길에서 탈선하면서 머리에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 후 8월에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요양생활을 지내면서

차츰 회복되었다.

 

롬멜이 병원으로 입원하고 난 후 며칠 뒤, 7월 20일 커다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히틀러 암살사건이었는데,

독일군 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 암살을 위해

총통지휘부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실에 폭탄이든 가방을 놓고

히틀러를 폭살시키고, 나치스 주요인사들 체포하여 나치스 정부를

전복시키는 쿠테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가벼운 경상만 입은 채로 살았고,

쿠테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및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여

대규모 숙청을 한다.

 

결국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은 실패로 끝났으며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도 역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다.

 

1944년 10월 14일, 사복의 게슈타포 요원들과 히틀러 명을 받은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미하엘 비트만 두 장군이 공모 죄를 묻기 위해

그의 집으로 왔다.

 

미하엘 비트만은 사건 연루의혹을 국민들에게 밝히지 않고,

조용히 죽는 대신,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장을 치러준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롬멜은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잠시 갈등했으나 군인으로 깨끗이 자신의 의지로 청산가리가 든

독배를 마셔 음독자살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는

그가 암살미수 사건에 관련되어 처벌당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자살을 권했다고 한다.

 

 

영화는 게슈타포가 롬멜의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해 독일 내부의 지휘갈등과

롬멜의 독일군 전세에 대해 객관적인 의견 등을 히틀러에게 건의하는 등

1944년 롬멜이 죽기 1년 전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웠던 독일군 롬멜 장군에 대한

다시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