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스님의 사회성찰 이야기인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라는 책은 이명박 재임기간인 2011년에 발간되었다. 이명박이 2018년 2월 취임한 이후 3년 차, 선거기간 내내 거짓말로 유권자를 호도하던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일삼으며 국정을 문란케 하는 것을 보고 묵과할 수 없어 붓을 든 명진스님이다.
이 책은 출판되었을 때 이미 읽고 기록한 흔적이 있으나 최근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행태를 볼 때, 이명박 정부를 능가는 거짓과 위선으로 나라를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믄 것을 보고 이명박 정부 시절이 생각 나 이 책을 다시 펴들었다. 명진스님 역시 무도하고 무모한 윤석열을 향해 “이놈!”이라며 지금도 죽비를 들고 계시다.
2013년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리뷰 - https://rosesense.tistory.com/m/entry/%EB%AA%85%EC%A7%84%EC%8A%A4%EB%8B%98-%EC%A4%91%EC%83%9D%EC%9D%B4-%EC%95%84%ED%94%84%EB%A9%B4-%EB%B6%80%EC%B2%98%EB%8F%84-%EC%95%84%ED%94%84%EB%8B%A4-13756598
이 책의 내용이 현 윤석열의 행태와 너무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많아 다시 읽으면서 데쟈뷰를 느끼게 된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으면서 책 내용을 발췌하며 되집어 보려 한다.
서문
“세상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 왜 MB와 MB정부를 비판하나
"사람들이 나에게 과격하다, 정치적이다, 비판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길에서 강도가 약한 사람을 패고 있는데 '저건 스님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스님일까.
거대한 권력이 힘없는 사람에게 압박을 가하고, 착취하고 소외시키고•·• 이런 것을 보고 개입하면 정치적이라 한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정없이 따귀를 갈 기는 것이 불가의 자비이고, 내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 역시 자비다." -2010년 2월 25일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 중에서-
불교의 상징물 하면 연꽃이 떠오른다. 진흙 속에 있으나 진흙에 물들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흙탕을 정화시키는 연꽃이 수행자의 삶을 닮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본디 저 혼자 산속에 들어가 도나 닦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유마경》에서는 "수행자는 시끄러운 곳에 있으나 마음은 온전 하고, 외도는 조용한 곳에 있으나 마음이 번잡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로 수행자가 있을 곳을 흔히 산중이라고 하지만 산중이라는 것이 환경이 고요한 곳을 의미하진 않는다. 진정한 '산중'은 마음에 번뇌가 없고 고요한 곳에서 이뤄진다.
진흙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수행자가 연꽃처럼 맑고 번뇌가 없이 고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의 일들에서 눈을 감는가? 길 바닥에서 누가 강도를 당해도 점잖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쫓아가서 강도의 칼을 빼앗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는 것이 수행자의 참된 길이 아닐까?
불교를 이야기할 때 흔히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말을 쓴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과 자비를 동시에 추구하고 이 두 날개로 속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절집을 한 번이라도 둘러본 사람들은 법당 벽에 그려진 십우도를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길을 10장의 그림으로 설명 한 게 십우도다. 소를 찾아 온 산을 헤맸으나 소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십우도. 그 가르침도 위대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참 멋지다. 손을 드리우고 세상을 향해 나간다는 뜻의 입전수수다.
노흉선족입전래(露胸跣足入廛來) 맨 가슴 맨발로 저자거리 들어오니
말토도회소만시(抹土途灰笑滿時) 재투성이 흙투성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
불용신선진비결(不用神仙眞秘訣) 신선이 지닌 비법 따윈 쓰지 않아도
직교고목방화개(直敎枯木放花開) 당장에 마른 나무 위에 꽃을 피게 하누나.
부처님께서도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60명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수행자의 길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것이다.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일신의 안락을 구하는 것은 본래 수행자의 길이 아니다.
수행자의 길인 자비는 단순히 베푸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세음보살이 천수천안을 가진 것은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고,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도우라는 의미다. 세상에는 천 가지 고통이 있고, 고통 받는 천 명의 중생이 있기에 천 개의 눈으로 살피고 천 개의 손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자비의 길, 수행자의 길은 거기에 있다.
저마다 고통이 다른데 자비가 어떻게 똑같은 모양으로 드러나겠는가. 배고픈 자에게 밥' 이 되어야 하고, 중병이 든 이에게는 '약풀' 이 되는 게 자비다. 처지와 조건에 맞게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이 자비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말로, 또 어떤 이에게는 엄한 꾸지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구걸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자존심이 무척 센 사람이 다. 그에게 따뜻한 밥 대신 "사지 멀쩡한 놈이 일해서 먹고 살아야지 왠 구걸이냐"고 뺨을 한 대 올려붙인다면, 분한 마음 때문에 정신을 차려서 거지를 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 죽어가는 사람이 구걸을 왔는 데 못 본 척하거나 뺨을 한 대 올려붙여서 되겠는가? 일단은 허기를 면하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주어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게 옳지 않겠는가?
자비를 베풀자면 상황과 처지에 맞게 해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마치 명의가 환자의 몸에 맞는 처방을 내놓듯이 말이다. 아무리 삼이 좋다고 해도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 준다면 그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만다.
불가의 자비는 때로 파격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할과 방이 그것이다. 할은 요즘 말로 하자면 ‘버럭’ 소리를 질러 잠든 정신을 깨우는 것이고, 방은 매질로 깨우치는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잠든 정신 을 깨우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선방에서 정진할 때 수마에 걸려든 수행자를 깨우기 위해 죽비를 내리친다. 미워서도 아니고, 공격함은 더 더욱 아니다. 잠에서 깨라는 자비의 매질이다.
MB에 대한 비판을 자비의 죽비'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MB 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MB 한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다. MB는 이 나라 대통령이다. 나라를 끌고 가는 사람이다. 그가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우리 국민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MB가 바른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MB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한다.
위장전입, 탈세, 범인도피, 위증교사 등의 전과자이며 부도덕의 대표 인물 MB, 개인적으로 흠이 많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530만 표 이상의 엄청난 차이로. 국민들이 그에게 도덕적 흠결이 있는 줄 몰라서 뽑은 게 아니다. 흠이 있어도 경제발전을 시켜줄 인물이라고 해서 뽑은 것이다. 경제발전이란 게 뭔가? 한마디로 잘살게 해준다는 거다. 잘살게 해준다는 그 한마디에 도덕이고 민주주의고 뭐고 다 내버린 것이다.
이는 배부른 돼지의 길을 선택한 것과 다름없다. 오로지 경제만을 위해 모든 가치를 포기한 선택이 오늘날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도덕이 무너지고 거짓말을 일삼아 신뢰가 붕괴된 사회가 잘 살 수 있는가? 여러 사람이 힘과 지혜를 모아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야 하 는데 도덕과 신뢰가 없이 이게 가능한 것인가?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선장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데 대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물론 나도 강남의 부자 절인 봉은사에 앉아서 경전 속의 고준한 법문만 하면서 조용히 지냈으면 외압을 받아 봉은사를 나오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소위 ’큰스님' 소리를 들으면서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불의의 시대에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종교인,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길을 가다 누군가 강도를 만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한발 물러서 있어야겠는가? 길에서 강도가 약한 사람을 패고 있는데 "저건 스님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라 고 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스님일까? 그렇게 되묻고 싶다.
히틀러 시대에 살았던 본 회퍼 목사는 "미친 사람이 차를 몰고 가고 있다면 당신은 종교인이라고 해서 그 미친 사람의 차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에서 미사나 지내주어야겠는가? 당장 그 미친 사람에게서 핸들을 빼앗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의를 봐도 모른 체 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본 회퍼 목사는 이렇게 경고했다.
"당신은 히틀러 반대자가 잡혀갈 때도 나와 상관없다고 침묵했고, 공산주의자가 잡혀갈 때도 나와 상관없다고 침묵했고, 유대인이 잡혀갈 때도 나와 상관없다고 침묵했고, 노조원들이 잡혀갈 때도 나와 상관없 다고 침묵했고, 가톨릭인이 잡혀갈 때도 나와 상관없다고 침묵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이 잡혀왔는데, 당신에 대한 부당함을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 시대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가 나 일 수도 있는 것이다. MB라는 불의의 시대를 만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잘못을 꾸짖으려 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뒷조사를 당하고 공권력에 의해 잡혀갔거나 억압을 받았다. 미네르바가 그랬고, PD수첩이 그랬다. 한때 MB를 탄생시킨 주역 중 하나였던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도 이상득 의원의 국정농단을 비판했다가 사찰을 당했고, 같은 당의 남경필 의원은 그의 부인까지 뒷조사를 당했다. 여당 중진 의원까지 뒷조사를 하면서 입막음을 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상황에서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정말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들만 말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 MB 시대였다. 나야 가진 것도 없고, 자식이 있기를 하나 마누라가 있나.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정권이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이 없다 보니 언제나 내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님들이 무서운 것은 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전에 임진왜란 때 패인을 분석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스님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산, 사명스님 등이 승병을 이끌고 싸웠는데 스님들은 처자식이 없다 보니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조선을 점령해서 가장 시급히 한 일 중 하나가 스님들을 장가보내는 일이 었다. 소위 마누라를 가진 대처가 아니면 절의 주지 임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불교를 길들이려 했다.
해방 후 자연히 한국 불교는 친정부적이고 권력에 약했다. 정치적 언급은 삼갔고 산중에 틀어박혀 자기 문제에만 몰두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시위 때도 별로 나서지 않았다. 세속 일에 무심해야 한다며 실제로는 중생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 했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님이랍시고 신도들에게 절을 받고 시주를 받았다.
과연 무엇 때문에 스님들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머리 깎고 승복 을 입었다고? 아니다. 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뭇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스승이 되어야 사람들에게 절을 받아도 덜 미안하고 덜 부끄러운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자비심을 내어 도와야 하는 것 이 수행자의 길이고, 불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바로잡아야 하 는 것이 수행자의 할 일이다.
MB 정부 하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다보니 ‘너무 정치적이다' , '과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까운 신도들은 "우리 스님이 정치적 말씀만 안 하셔도 너무 좋을 텐데••"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2008년 8월 종교 편향 시위를 위해 불자 20만 명이 모였다. 자신이 손해를 볼 때는 그렇게 목청을 돋우면서 사회적 약자인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몇 마디 거들면 정치적이라고들 한다.
내가 MB를 비판해서 개인적으로 얻는 이익이 있어야 정치적인 것이 지 큰절에서 쫓겨나고 《민족21》 사건으로 뒷조사나 당하는데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겠는가? 세속의 손익으로 따지자면 한참 손해보는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옳은 길이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옳은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빛나는 성공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사람들이 일상적 삶에서 철학적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자면 우선 의식주, 기본적인 삶의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집이 없어 전셋집으로, 월세방으로 쫓겨다니다가 결국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애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애를 안 낳으려고 하는 세상, 이런 세상은 불교적 관점으로 극락이니 지옥이니 따지기 전에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수행자가 이러한 세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치인이 됐건, 그 누가 됐든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묻고, 어떻 게 사는 것이 더 나은 길인가 고민하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치적일 수 있다. 내가 만약 정치적 발언을 좀 했다면 이런 차원에서 정치적 발언이고, MIE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그런 차원에서의 비판이다.
나를 아끼는 분들 중에 혹 “스님이 저러다 어찌 되지 않나"라는 염려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한 가까운 신도가 하도 걱정하기에 '내가 왜 힘 있고 돈 있고 걱정할 것 없는 사람들 편에 섭니까?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야지요. 그게 수행자의 자리 아닙니까?‘라고 말해주었다. 나 를 염려해주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좋으냐 나쁘냐를 걱정하지 말고 세상에 좋으냐 나쁘나를 염려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거룩한 성자 같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것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님도 《스님은 사춘기》 출판기념식에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으려 마시라. 그것은 사기꾼의 길"이 라고 충고해 주셨다. 부처님께서도 모두에게 칭찬 받으려 말라. 언제나 칭찬만 받는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MB에 대해 비판할 때 "산중의 수행 덜 된 중이 하는 말이라고 고깝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돌아볼 것은 돌아보면서 나라가 잘되는 방향으로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의 불행은 그 한 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온 나라의 불행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의 경고나 조언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고쳐지지 않았다. 우 리가 말을 해도 못 알아들을 때 '소 귀에 경 읽기' 라고 하는데 소는 인간 에게 얼마나 이로운 존재인가? 고기, 가죽, 뼈, 피 등등 너무도 많은 것을 주는 존재다. 그런 존재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생 각해보니 인간 곁에서 가장 말을 잘 안 듣는 것이 쥐여서 앞으로는 ’서이독경‘, 즉 '쥐 귀에 경 읽기' 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MB에 대해 비판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속에 천불이 났는데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답답한 가슴이 뻥' 하고 뚫렸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간다. 수행자가 고준한 법문 으로 기억돼야 하는데, MB 비판한 것으로 회자되다니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말들로 위로 받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MB 비판을 통해 결국 구하는 것이 있다면 중생의 행복이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의 풍요를 통한 행복 추구가 아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있고 도덕이 있고 서로 돕고 사는, 살맛 나는 세상이어야 행복한 세상이다. MB는 그것에 역행했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다. 물론 욕망이 질주하는 이 시대가 MB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듯 MB를 통해 우리 시대를 성찰해볼 수 있는 것이다.
MB 비판을 통해 MB의 잘못도 고쳐야겠지만 MB를 뽑은 우리 시대의 욕망에 대해서도 꼬집고 싶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오로지 물질적으로 잘살려고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더 나은 세상으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때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MB를 비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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