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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잡동사니

한국 유스호스텔연맹 여행수기 공모 당선작 (2)

by bluesky0321 2001. 12. 10.

그리고 며칠 후, 가족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랄 것도 없이 그저 거실에 모여 앉으면 되는 것을 굳이 가족회의라며 모이라고 하니 큰 딸,
작은 딸, 막내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빛을 주고 받는다. 집사람까지 덩달아 주방에서 뛰어오
며 왠일인가 하는 눈치다.

“아빠가 지금부터 중대 발표를 하겠다. 모두 귀담아 들어 보도록…..”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의 눈길조차 자뭇 진지하다.
“올해부터 너희들에게 여름방학 때 외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먼저 은예부터…
은예는 올해 아빠랑 일본을 1주일간 여행하기로 한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환호성과 한
숨이 동시에 교차된다.
은예는 당연히 신이 나 “언제 갈건데… 어디 갈건데…” 수다가 시작된다.
둘째 딸 은진이와 막내 태훈이는 “우리는 언제 가!” 하며 입이 뾰루퉁하다.
“걱정마라, 너희들도 6학년 여름방학 때 꼭 외국여행을 시켜 줄께” 라고 달랬지만 그때까지는 너
무나 멀게 만 느껴지는지 올해 다함께 가면 안되느냐고 조르기 시작한다.
다함께 가기가 여의치 않음을 설명하고 6학년이 될 때까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하
였다. 그러자 옆에 있는 집사람은 반농담으로 “저는요?” 라고 눈치를 본다.
“은진이가 6학년이 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니 당연히 당신은 내년에 가면 되지” 라고 말하자
이때까지 달래놓았던 얘들의 불만이 또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르는 얘들이 밉지 만은 않다.
이번에는 아내가 더 적극적으로 얘들을 달래고 이해시키려 애쓴다.

방학이 다가오자 은예는 내심 흥분이 되나 보다.
콧노래 소리도 자주 들리고 영어공부도 열심인 것 같다. 학교에서는 방학 때 일본에 간다고 자랑
을 하였는데 너무 부러워 하더라며 으시댄다.
그러잖아도 IMF 이후 주춤하던 해외여행이 늘어나며, 관광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매스컴의 뉴
스를 보고, 그기에 나도 일조를 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마음인데 학교에서 자랑하고 다닌다니
내심 불안하다. 나름대로는 최소의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기 위해 나름대로 빡빡한 일정과 예산
집행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건만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과소비로 비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은예에게는 조용히 타일렀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가기전
에 일본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보고 미리 일본에 대해 이해를 하고 가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비용의 절감을 위한 배낭여행으로 국내여행보다 오히려 힘들고 피곤할 것이라며, 무조건
해외여행이라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
지 않을 것이라고 한 유홍준 교수의 말을 생각하며 여행준비에 철저를 기하려고 마음먹었다.
어렵게 결심한 여행인 만큼 은예에게 많은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만이 앞서 출국 일부터 귀국
일까지, 아침 6시 기상부터 10시 숙소에 들어올 때까지 빡빡한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출력한 각종 일본에 관한 정보, 동경의 역사, 문화, 교통수단, 관광지 정보 등
을 파일로 만들어 은예에게 주며 읽어 볼 것을 권했다.
관광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이 있어야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상식 때문에
혼자만 서둘렀다.

그러나 일본현지에 도착한 첫 날, 내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여행계획표에 얼마나 큰 무리수가
내포되어 있는지 금새 알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스케쥴에 따라 동경역으로 이동
하여 역주변을 관광하고 일본천황이 산다는 황거를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황거는 평소에는 개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뭔가 색다른 기대를 가지고 갔으나,
큰 공원 그 이상의 의미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국땅을 밝는 첫 날인 만큼 황거 외곽을 한바퀴 돌면서 이국이 풍경을 스케치하기로 했
다. 황거 주변은 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연못으로 빙 둘러 쳐져있는데 그 주변은 시민들이 산책하
기에 아주 적합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직 숙소에 들러지 못한 상태라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녔는데 인도와 차도가 겹치는 부분의 보
도블럭 턱이 잘 정비되어 있어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도심의 차량이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연못과 황거의 정원때문인지 생각보다 공기가 매
우 맑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한 낮인데도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이국의 모습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며, 은예도 전혀 이질
감을 느끼지 않고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급하다. 빨리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오늘 오후부터 예정된 아사쿠사를 비롯
하여 차례대로 차질없이 구경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 급했지 예정된 시간은 자꾸 어긋나기 시작했다.
은예를 다그치고 다그쳐서 밤 10시에 숙소에 들어 올때까지는 계획된 모든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은예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다음날도 강행군으로 관광지를 끌려 다닌 은예는 급기야 배가 아프다고 난리다.
이제 이틀째인데 너무 무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무엇을 위한 관광인가?
주마간산 격으로 훝고 지나가면 되는 것인가?
어차피 일본이란 땅에 들어왔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자체가 경험이요, 관광이지 굳이 명승고적이라
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듯이 허둥지둥 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을 주입시키려 한 부모의 욕심이 어린동심에 오히려 아픈 상처를 남길까 두려운 생
각이 든다.


사진설명)

1. 후지산 자락의 하꼬네에 있는 오와쿠다니 온천지역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같은 것이 화산활동에 의한 유황가스가 분출되는 모습.

2. 옛날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는 호수 (호수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네요)
사진에 보이는 배를 타고 유람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