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유럽여행을 제 집 안방드나들 듯하는 시대지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런
그리고 외화절약에 대한 구호가 한창이던 때라
해외여행은 많은 이들의 꿈이었다.
지중해의 나라 프랑스 중에
남족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유학을 갓 마치고 귀국한
김화영작가가 쓴 산문집이다.
이글은 1975년 6월 소설가 김승옥이 장정한 "오늘의 산문선"을 통해
먼저 독자에게 선 보인 작품이다.
이를 단행본으로 발행한 것이 김화영의 산문집이
행복의 충격이다.
저자에게 있어 무엇이 행복의 충격이라는 걸까?
책의 본문 속에서 '행복의 충격'이란 말이 딱 한군데 있다.
사철 밝은 햇빛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 위에, 풀밭에, 거리에, 카페에 잘도 내리비치고,
소나무와 잡목림이 곳곳에 무성하며, 아름 드리 가로수가
드넓은 포도 위에 그 너그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아르크의 실개천이 엑스 시를 굽이돌며 그 빛 밝은 전원풍경을 안고
흔들어 재우는 풍경이라고 묘사를 해놓고 보면
나의 불안한 마음은 더욱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요컨대 나는 갑자기 병풍그림이나
외국의 원색판 사진첩이나 화집 같은 곳에 그려진
행복한 풍경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게 된
침입자만 같아서 안정부절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그때의 얄궂은 저항감이나 불안정감은 아마도
내가 최초로 받은 ‘행복의 충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프로방스에 도착하기 전
나의 반 생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혹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내가 때때로 경험한 행복은 단순하지 않고
반드시 어떤 아이러니컬한 형용사가 동반된 것들,
즉 ‘어두운 행복’ ‘젖어있는 행복’ ‘눈물겨운 행복’ 같은 것들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말은 이상하게도 ‘안정’이라든가,
또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신문기사들이 ‘좋은 남편이요 좋은 아버지였다’라고
회고하기 일쑤인 사람들의 ‘단란한 가정생활’ 혹은
‘아담함 집, 따뜻한 방’ 따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잘 보호된 세계, 닫힌 공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학 시절 어디선가 읽은
장 폴 사르트르의 말, ‘빤들빤들한 마누라와 동글동글한 자식들을 거느린,
볼 장 다 본 녀석’의 편안하고 문제없고 의미 없는 생활과도
행복은 그리 무관한 것이 아닌 듯 여겨졌다
1970년대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이들을 엑상 프로방스에 대한
동경과 꿈을 찾아 지중해의 한적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티치아노 베젤리오의 시지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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