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경주에 있는 옥산서원을 찾았습니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 5년(1572)에 세워졌으며, 이듬해에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지되지 않아 4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강학공간인 구인당 마루에 앉아 정면에 보이는 자옥산 능선을 바라보니 그 옛날 이 마루에 앉아 공부하던 유생들의 꿈이 생각나는 듯 합니다.
옥산서원의 정문 격인 역락문입니다.
역락문은 논어의 첫 부분 구절인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 지었다고 합니다
역락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무변루. 사진은 무변루를 들어와서 안쪽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휴식처로 무변루의 명판은 한석봉 글씨입니다
무변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옥산서원 구인당 모습
강의와 토론이 열렸던 강당으로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옥산서원 현판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합니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의 이름이 구인당입니다
동재인 민구재로 나이가 많은 유생들이 지냈다고 합니다
서재인 암수재 모습입니다
통나무를 깍아 만든 계단이 이색적입니다
구인당 안쪽에서 무변루 방향으로 본 풍경으로 앞쪽에 보이는 산이 지옥산(약 570m)입니다
강당 위쪽이 걸려있는 각종 현판으로 옥산서원 건립에 대한 내용이 작혀 있습니다
구인당 마루 양쪽의 양진재와 해립재는 교사들이 지내는 곳으로 현대 학교의 교무실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제향공간인 체인문입니다. 안쪽에 이언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이언적의 신도비로 원래 서원 앞 계곡에 세웠는데 물이 불어나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로 서원 안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신도비에는 이언적의 평생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언적은 16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람파 관료로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파직을 당하고 귀향하여 경주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이후 복귀하였으나, 1547년 정미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선조 원년 1568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와 종묘에 배향되었습니다.
* 동방오현 : 동방 즉, 우리나라 다섯 분의 매우 뛰어난 현인, 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을 가르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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