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칠보산은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산으로 정상의 표석에
높이 778m로 표기되어 있다.
요즘 어느 산 할 것없이 산 정상의 표석은 자연석 또는 그럴듯한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 놓았는데 칠보산의 정상은 다소 밋밋하다.
높이 약 1미터, 가로세로 폭 10여 센티미터의 대리석 표석이 쓰러질 듯 서 있고
정상은 맨 살을 드러낸 채 생채기가 깊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표석을 인위적으로 잘 가꿔진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고...)
칠보산은 서울에서 중부고속도, 영동고속도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의 괴산 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달리다
속리산 방면으로 좌측으로 10여 분 더 달리니 쌍곡휴게소가 나왔다.
일기예보에는 저녁무렵부터 비소식이 있다 했는데
쌍곡휴게소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촉촉히 내리기 시작했다.
등산 코스는 애초 떡바위에서 올라가 절말로 내려오려 했으나,
하산길에 비가 많이 오면 절말쪽의 멋진 풍광을 제대로 감상하기어려우니
올라갈 때 경치가 멋진코스로 올라가자는 산우님의 제안이
있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칠보산은 처음 가 본 산이지만 첫 느낌은
소나무가 분재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요즘이 자연산 송이가 나는 철이라 하여
칠보산 정산으로 올라가는 다양한 탐방로가 죄다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큰 탐방로를 따라 곧장 정상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집바위 등 아기자기한 작은 봉우리들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칠보산에 소나무가 (표식에 금강송이라 적혀있다)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괴산에는 옛날에 옹기, 자기, 기와 등을
굽는 가마터가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기와굽는 방법하나가 잘못되어 좋은 소나무가 날로 줄어든다.
우리나라 가마는 옆으로 길게 누운 모습이라 불의 힘을 세게 해야 하기 때문에
소나무를 재료로 쓰는데, 소나무는 한번 베어 내면 새움이 돋아나지 않는 나무이므로,
한 번 가마꾼을 만나면 사방의 산은 민둥산이 되고 만다.
백 년 동안 기른 것을 하루아침에 다 없애버리고 이내 다시 새처럼
흩어져서 소나무를 찾아 가 버린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에서)
불행 중 다행으로 칠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분재같은
소나무가 너무 많아 쉬는 틈틈이 시가 절로 나올 듯하다.
특히 정상을 한 오백미터 남겨 둔 지점 부터는 바위와 금강송이 어우러져
고개를 돌리는 쪽마다 한 폭으로 그림이다.
비가 귀찮치 않을 정도 뿌려 더위도 식히고,
능선에 오를 때마다 골에서 들이치는 바람에 숨이 막힌다.
3450 산악회의 탁월한 산행코스 선정이
탐방 때마다 기막히다.
산행 시작점에 있는 소박한 이정표!
절말에서 줄곧 정상으로 올라가 떡바위로 내려왔음.
보슬빈지 이슬빈지 크게 젖지 않을 정도로 내려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나무로 만든 현수교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정상가는 길의 중간을 조금 지난 지점인데 송이철이라 이렇게 통제되는 구간이 많다.
샛길로 빠져가야 아기자기한 다양한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아쉬웠음.
지금부터 칠보산의 보물인 금강송의 아름다운 자태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힘든 바람때문인지 수령때문인지 고사목이 많다.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 했는데
금강송 또한 이 못지 않다.
바위를 이렇게 깨뜨리며 푸르름을 간직했을 모습이 그립다.
고사목이 된 지금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영락없는 거북이 되기도 하고.
내가 최고라는 나의 엄지손가락이 되기도 한다.
산우들의 기다림에 아랑곳 없이 후미 일행은 끝까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이제 가을이 다가옴을 느낀다.
벌써 이른 단풍은 옷을 갈아 입었다.
하산의 막바지를 반겨주는 코스모스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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