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존자가 창건 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하였다. 자장법사와 원효성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이 중창하여 조선 세종 6년(1424)에는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대가람인 8원 81암자가 모두 타 버렸다. 이때에 주지 설홍대사가 승병 153명과 함께 석주진을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8년 (1630)에 벽암 각성대사가 동•서 오층 석탑을 중창하고 중수하였다. 이후 계파당 성능대사가 숙종 25년(1699)에 각황전 중건을 시작하여 숙종 29년(1703)에 중건 불사를 회향하자 선교 양종 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원 등의 수행 공간이 있으며,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 배치의 아름다움이다.
4사자 3층 석탑, 공양탑, 연기 존자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효대, 원통전 앞의 사자탑, 각황전 앞의 화엄 석등, 동•서 석탑, 대웅전 뒤편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볼 수 있는 천불전,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암 등이 화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화엄사는 가람 배치 모양이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다.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봄에 홍매화가 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