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잡동사니

퀵서비스의 세계를 아시나요 ? (망할 회사는 미리 안다)

by bluesky0321 2001. 11. 5.

자동차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사용해요. 하지만 헬멧을 쓰고 있 으면 불편하기도 하고, 바람소리까지 섞여 들려서 잘 알아듣기가 힘 들어요.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방향의 일이 있는데도 잘 듣지 못해 서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수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죠』 그는 비수기 때에도 주문량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인 기가 좋은 편이다. 성실함과 명랑한 성격이 그의 가장 좋은 무기인 것 같다. 게다가 洪씨는 서울 全域(전역)의 지도를 거의 다 외울 뿐 만 아니라 두 번 이상 가본 곳의 위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초기에 는 서울시 지도를 펴놓고 지하철 노선과 한강 다리를 중심으로 위 치를 익혔다고 했다.

그날 洪씨가 맡은 첫 번째 일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世現海運(세현해운)에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現代綜合金融(현대종합금 융)으로 서류 봉투를 急送(급송)하는 일이었다. 같은 區(구)에서의 배달을 기본으로 할 때 요금은 5천원이며, 거리와 물건의 무게에 따 라 추가요금이 붙는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서초구 서초동까지의 배달 요금은 8천원이지만 주요 거래처라 할인된 가격인 6천5백원이 라고 했다. 그래서 라이더들은 경기도 수원, 이천 등 시외로 나가는 일을 선호한다. 한 번에 3만원 이상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세현해운에서 도착지에 대한 간단한 위치 설명을 들은 뒤, 배송할 서류를 받았다. 이처럼 배송할 물건을 받아 오토바이에 싣는 일을 이들은 『픽업한다(Pick Up)』라고 표현한다.

필자까지 태운 洪씨는 소공동에서 서초동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재빨리 생각한 다음 지체없이 출발했다. 달리다 보면 信號(신호)도 없이 車線(차선) 변경 을 하는 차나, 갑자기 멈춰서는 택시, 택시 잡으려고 뛰어나오는 사 람, 횡단보도를 건너오자마자 버스에 타려고 뛰어든 사람 등 위험한 요소는 너무나 많았다. 차간 거리를 잘못 계산하면 정말 차의 측면 에 무릎이 긁히기도 한다고 했다. 게다가 매연과 먼지, 바람이 숨을 막고, 비포장길을 달릴 때는 돌이 눈에 튀어 다칠 때도 있다. 반포대교를 달릴 때에는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시속 80㎞를 넘어 1백㎞까지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반 自動車를 타고 달릴 때는 느끼 지 못했던 바람의 壓力(압력)이 느껴졌다. 뒤에 타고 있어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듯했고 눈을 뜨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필자는 헬멧이 벗겨질까봐 한 손으로 헬멧을 누르고, 나머지 한 손으로 손잡이를 꽉 쥐었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 양재역 방향으로 달리다 도착지인 성우빌딩이 길 건너편에 나타나자, 오토바이는 사람처럼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이륜자동차의 편리한 점은 상황에 따라 「자동차가 되었다가 사람 이 되었다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망할 회사는 미리 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대종합금융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 들어 서서 입구쪽에 앉은 사람에게 受領人(수령인)의 이름을 대자 자리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물건을 받는 수령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무 뚝뚝한 얼굴로 물건을 받기만 했다. 옆에 서 있는 필자의 얼굴이 무 색해질 지경이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필자가 『어떻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안 하죠』 했더니, 洪씨는 『많이 바쁜가 보죠… 우리 같은 사람, 사람으로 보기나 하나요』 하면서도 별로 기분 나쁜 표 정은 아니다. 그러나 회사 분위기가 냉랭하다는 데는 동의했다. 이 렇게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사무실마다의 분위기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삼부 파이낸스 사건이 터지기 하루 전날, 삼부 파이낸 스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었어요. 그런데 그 넓은 사무실이 텅텅 비 었고, 단 두 명의 직원만 나와서 일하고 있더군요. 제가 물건을 주 니까 그냥 두고 가라고만 하더군요. 그래서 분위기 되게 썰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일이 터졌더군요』

현대종금 앞에서 다시 무전을 주고받더니 같은 서초동의 일을 또 하나 주문 받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15~16건이며, 택시가 합승을 하듯 같은 방향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도 한다. 배 달을 부탁한 회사에 도착하니 洪씨와 같은 회사의 라이더가 오토바 이에 물건을 싣고 막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洪씨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서로를 이름 대신 번호로 呼名(호명)하는 것도 특이하다. 상대 방 라이더는 보기에도 꽤 나이가 들어보였다. 洪씨의 설명으로는 내 년이 환갑인 사람인데,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일을 해서 아파트도 장만하고 자식들 시집 장가도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洪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도 같은 회사의 동료들을 보면 반 가워하면서 인사를 한다. 그는 동료들과 만나면 함께 음료수를 마시 기도 하지만, 가정을 꾸려가는 40대 이상 라이더들은 철저히 개인주 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洪씨는 이 일을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원래 명랑 한 성격이었던데다, 일을 통해 넉살이 더 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실수도 많았다고 한다. 서류를 운반하다가 바람에 모두 날려버린 적 도 있었고, 한 섬유회사의 원단 샘플을 주머니에 넣고 달리다가 반 포대교에서 흘린 적도 있었다. 다시 보낼 수 있는 물건이면 다행이 지만, 아닐 경우에는 당황하게 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애써서 픽업 장소까지 갔는데 그때서야 배송을 취소하는 때이다. 규정상으로는 그럴 때 5천원을 받게 되어 있지만 그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진제공 : 모터패션

1.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2. 차 사이로 빠져나는 데는 귀신이다. (하긴 이런 것이 오토바이의 장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