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한시간 이상 계속된 긴장된 오프로드 투어를 잠시 쉴겸,
헬멧을 벗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를 쭉 뻗고 뒤로 젖힌 두팔에 상체의 무게를 싣고
심호흡을 하면 뒤로 벌러덩 눕고 싶어진다.
이럴 때 폐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숨결은 맛보지 않은
사람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가슴속을 알싸하게 파고드는 박하맛 같은 향기를....
저 멀리 맞은편에서 차체를 뒤뚱거리며
한 대의 오프로드 사륜차가 다가왔다.
한가족이 타고 있는 사륜차에서
오지에서 만난 오토바이가 반가운 듯 손을 흔들어 주며,
길가에서 땄다며 다래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에 나오는 다래인데
아마 도심의 아해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슈퍼에 가면 '키위'란 것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말로 '양다래'라고 한다면
이해 되시려나. 키위는 다래를 개량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래는 익으면 말랑말랑한게 단맛이 매우 강하며,
입속에서 까만 씨가 아작아작 씹히는데 끝 맛은 좀 떨떠름하다.
오프로드 주행을 시작한지 두어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약간은 겁이나기 시작했다.
두어번 넘어지고 나니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 심신이 너무 지치고,
오프로드코스가 너무 길어 공포감이 더했다.
그런데 환상의 코스가 나타났다. 여기가 아침가린가 보다.
좌우로 낙엽송들이 도열해
아름다운 단풍잎을 흩날리는 오프로드는 산속의 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벌판의 농로를달리듯 평탄하다.
비 온 뒤 주행한 4륜구동차의 바퀴자국이 깊이 패여
오토바이의 원할한 주행을 방해하긴 해도 그것이 오히려 멋스럽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아 노면전체에는 잡초들이 무성하다.
길이라고 생긴 곳에 이러한 풍광은 처음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갔다가 발 앞을 휙휙지나가는 뱀들에게
놀란 기억이 있는가?
마치 어릴적 추억이 새롯이 솟아나는 그런 길이다.
아침가리가 끝났을 즈음,
오른쪽으로 가파른 오프로드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길은 해발 1388미터의 구룡덕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토바이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지의 오프로드 길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길은 다음기회를 위해 미지의 고지로 남겨두기로 했다.
사실은 오랜시간 오프로드 주행으로 지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오후 4시가 지났는데 아직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력이 없었다.
물론 약간의 간식은 준비했지만 요기가 되지는 못했다.
빨리 오프로드를 벗어나 따뜻한 식사를 마주할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오프로드 여로는 끝났다.
작은 바위부스러기들이 산재한 내리막길을
곤두선 신경을 앞세우고 한참을 내려왔을 무렵 저 멀리 양양에서 홍천으로 넘어오는
56번 국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월둔교"를 빠져나와 56번 국도에 합류했다.
몸에 전해지는 진동이 다르다.
마치 스카이콩콩을 타다 소파위에 편히 누운 기분이다.
미산계곡의 공사로 인해 들러지 못한 "살둔산장"에 들러기 위해
446번 지방도를 따라 다시 상남방면으로 향했지만
정보부재로 "살둔산장"은 찾지 못했다.
공사중인 인부는 전부 외지인들이라 산장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귀경길을 서두르기 전에 체력보충을 위해 들런 음식점에서
토종닭으로 도리탕을 주문했다.
"아주머니 토종닭같은 거 있어요?"라고 묻는 내말에
"토종닭 같은 것은 없고 토종닭은 있어요"라고 위트있게 말을 받았다.
피곤한 여정에 아주머니의 재치있는 말은
잠시나마 우리의 피로를 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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