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길귀신은 시의 귀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곽재구 시인이 자라온 과정과
와온이라는 평온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글들이
가슴에 촉촉히 녹어드는 산문집이다.
'사평역에서' 는
곽재구 시인이 문단으로 데뷔한 작품이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을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 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장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도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답사 일번지 1 -- 와흘 본향당 (0) | 2017.05.05 |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0) | 2017.02.01 |
책은 도끼다 (박웅현) (0) | 2016.12.11 |
고은 작은시편 '순간의 꽃' (0) | 2016.12.02 |
그 쇳물 다시 쓰지마라 (0) | 2016.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