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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도서 감상

곽재구의 길귀신의 노래

by bluesky0321 2016. 12. 30.

 

시인은

길귀신은 시의 귀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곽재구 시인이 자라온 과정과

와온이라는 평온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글들이

가슴에 촉촉히 녹어드는 산문집이다.

 

'사평역에서' 는

곽재구 시인이 문단으로 데뷔한 작품이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을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 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장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