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는
훈장아닌 훈장이 찍힌 두번째의 책으로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골랐다.
2002년 초판 후 10여년의 훌쩍 지났지만
우리나라 포구가 주는 이미지는 그대로 글 속에 녹아있다.
동해안 화진포에서
해남 송지 어란포구까지
곽재구 시인이 발로 다녀 본 느낌을 적은 글이라
실제 내가 그곳 포구에 있는 듯한 착가에 빠진다.
기행문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이면 작자의 의도를 느끼고
나중에 내가 여행할 때의 느낌을 미리 그려보는 것이고
이미 가본 곳이라면 내 느낌이 글 속에
반추되어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으로 다녀온
우리나라의 포구들 중 간척사업으로 이미 없어진 곳도 있지만
아직까지 팍팍한 삶을 고달프게 이어가는
아름다운 포구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화진 가는 길
외로움 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 올 때 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란히 누워 서로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삶의 시간들이 피워내는 가장 따뜻한 형상의 꽃들이
동해의 푸른 물살과 수평선 위에 펼쳐진다.
파도와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 꽃처럼 발밑에 쌓이고
갈매기들의 비상은 색종이처럼 머리 위에서 쏟아진다.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방파제가 끝난 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꿈꾼 시간의 흔적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선유도 기행
길 위에서 알지못할 방향때문에 시간을 쓰는 것은
바보스런 일이다.
길 위에 시간이 펼쳐지고 시간 속으로 길들이 이어진다.
눈 앞을 걸어가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포구에서 기분 좋은 일 중의 하나는
이리저리 걸어가다가 마주치는 배들의 이름을 읽는 것이다.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주들은 자신들의 배에 어린시절의 고향 동리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나
술이름을 적어놓는 로맨티스트들도 있다.
먼 이국의 항구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그 이름들의 이미를 다 모아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가 되리라.
무녀도로 들어가는 선유교 다리위에서
세개의 가로등 불빛을 보았다.
나는 그 중의 한 불빛 아래 다리를 뻗고 앉았다.
불빛이 내게 말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야.
나는 불빛을 보며 씩 웃었다.
동화와 지세포를 찾아서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럈소
길 (현담)
저녁 어스름
길에 나가서 길을 묻는다
저기 마을 안쪽은 환한 스크린이다
사람들 크게 번지다 사라진다
길 위에서
누가 길을 묻는다
그림자 길게 끄을며 아직 누가 길을 묻는다
어청도에서
삼천포 가는 길
삼천포 (백석)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둘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을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가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르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라로히 가난하니
동해바다 정자항에서
얼핏 단정해 버린 낮의 풍경들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아름다운 포구 구만리
진도 인지리에서 남동리 포구로 가는 길
순천만에서
화포에서 만난 눈빛 맑은 사람들
거차에서 꾸는 꿈
항일암에서 나무새의 꿈을 만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팥죽집 가는 길
바람과 용, 그리고 해산토굴 주인을 위하여
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남제주군 대정읍 사계포
우도로 가는 길
조천
하늘의 아침이 열리는 곳
바람아래 해수욕장을 찾아서
지심도롤 가는 길
춘장대에서 쿄코를 읽다
충남 서천군 장항
경남 고성군 상족포구
해남 송지 어란포구
언어의 연금술사
작가를 시인을 그리 말하는가?
글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참 이상하기도 하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좋은 글이 담긴 책이 주는 선물이다.
세상의 아픔을 나는 몰라라 하는 세상이 이런 따스만 마음을
갖게 해 포구기행에 감사한다.
진도 청해진 여객선 사고로 저 멀리 간
어린 학생들의 영령에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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