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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스카이의 여기저기 자잘한 여행기
곱게 늙은 절집

화순 영귀산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만나다

by bluesky0321 2014. 7. 17.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눈코 없는 돌부처들

마당 한가운데 서서

그냥 비를 맞고 있습니다

 

못난 제 얼굴에도

세차게 비를 뿌리소서

 

정희성 시인의 '운주사에 와서'란 시입니다.

생애 처음 운주사에 들런 날

비가 내렸습니다.

 

시인의 시가 마음에 와닿은 날입니다.

 

 천양각색의 표정이 살아있는

천불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살아 있는 인간의 표정은 모두 담았겠지요?

무표정하나 소박한 표정에 정이 갑니다.

 

 

 

운주사는

돌로 만든 석탑과 불상이 1천개씩 있었다하여

천불천탑의 도량으로 불린다.

 

일주문 앞에는 영귀산 운주사란 현판이

뒷면에는 천불천탑도량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 운주사에는

석불 93기와 불상 21기 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 화순의 깊은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만든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운주사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운주사 절터에 대한 설명이다.

그만큼 현재의 남아 있는 불상과 탑이 적음을 말해준다.

 

 

 

일주문을 지나 잠시 걸어들어가면

운주사 9층 석탑을 비롯하며

많은 석탑과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운주사의 탑에서는 다른 사찰의 탑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무늬가 있는데

운주사 9층 석탑에는 마름모꼴의 무늬가

각 층의 기단마다 새겨져 있다.

 

 

 

불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자세 또한 생긴대로 서 있다.

근대에 다시 정렬하였겠지만 천불 천탑이

존재했을 당시의 위용을 가늠해 볼 만하다.

 

 

 

여기에 있는 석탑과 불상은

근처 산의 돌을 캐서 깍은 것이다.

주변에 채석장이 있어 그것을 알 수 있다.

돌은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화산폭발 시 분출되는

현무암 덩어리 처럼 푸석 푸석하여

가공은 다소 쉬워 보인다.

 

 

 

그렇다고 하나 결코 조형미나 예술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불상의 섬세한 옷자락이나 손의 모습은

우아함 그 자체이다.

 

 

 

바위에 기대어 선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산사에서의 해탈한 경지가 묻어난다

 

 

 

운주사 9츠 석탑에서 약 100여 미터 걸어들어 오면

운주사 7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X자형의 교차무늬가 두개씩 양각으로 각인된 것이

여느 탑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형식이다.

 

 

 

그 뒤로 운주사에서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광배석불좌상이 있다.

고려시대의 형식을 띄고 있다한다.

 

 

 

광배석불좌상은 다른 불상에 비해

두께는 얇은 편이다.

코, 눈, 귀와 손, 발의 모양은 양각을 하였으며,

운주사 석불 중 더물게 돵배가 표현되어

가치가 높다.

 

 

 

운주사 7층석탑에서 일주문 쪽의

운주사 9층석탑을 바라 본 풍경

살포시 내린 비 덕분에 석불과 푸른 잔디와 하늘이

만드는 그림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다시 몸을 돌려 대웅전을 향하면

지금까지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양의

석탑을 만나게 된다.

 

 

 

운주사 석조불감이란 것이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한 집이나 방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규모가 작다고 한다.

운주사 서조불감은 건물밖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석조불감 안에는 앞 뒤로 두 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다소 꽉 끼인 듯 지어진 불감 탓에

안에 있는 불상이 좀 답답해 보이는 느낌이다.

표정이나 형태가 전혀 다른 두 불상이 등을 맞댄 형식이다.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형식이 독특하다.

지나가는 해설사의 말을 빌면

삼별초 항쟁 때 쫓겨가던 몽고군의 영향을

받은 탑이라 한다.

다층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이는 6층이

모두가 아닌 모양이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앞에 있는

찻집에서 향기로운 다향이 흘러 나온다

행여 발길을 돌릴새라 다향이 걸음을 멈춘다.

 

 

 

찻집에서 바라보는

석조 불감과 운주사 7층 석탑이

더욱 운치있어 보인다.

 

 

 

진한 대추차에

시루떡 한 조각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한다

 

 

 

운주사 사천왕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 사천왕상은 없다.

건물 좌우로 행정실과 잡무실이 설치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문짝에 그려져 있다.

사찰로써의 형식을 따르지 않음인가?

의아할 따름이다

 

 

 

천왕문을 나오면 정면에

대웅전이 있다.

그 앞에는 운주사 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탑은 고려시대 양식이다.

 

 

 

천왕문 왼쪽으로 범종각이 있고

 

 

 

그 옆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이 있다.

 

 

 

 

운주사 너른 마당과 법당을 둘러보고

대웅전이 위치한 뒷산으로

석불과 석탑을 찾아 올라가 본다.

이정표에 있는 것들을 만날 에정이다.

 

 

 

발형 다층석탑

이름만 보아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발형이란 것은 쌀 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란 뜻이다.

아마 이 탑에는 무언가를 넣었던 모양이다.

 

 

 

석불군"마" 영어로 "E"이다

석불이 많아 일일이 이름을 짓지 못하고

가나다 순으로 매겼다.

 

 

 

불사바위로 올라가는 길

욵사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불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

멀리 입구의 9츨석탑부터 모두 보인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정겹다

 

 

 

명당탑이다.

이곳이 명당이란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석불 중에 유일한 여래불이며,

광배석불좌상과 함께 광배가 있는 석불이다.

 

 

 

 

운주사 거북바위 5층석탑과

7층 석탑이다.

거북이를 닮은 바위에 위치한 두 탑에도

역시 교차무늬가 새겨져 이다.

 

 

 

석불군 "바" "F"이다.

거북바위 바로 아래 자리하고 있다

 

 

 

 

와형석조여래불이다.

이 여래불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하였는데

일하기 싫은 동자 하나가 새벽이 오기전에

"꼬키오"하는 바람에 일꾼들이 사라져버려

미완으로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칠성바위이다.

7개의 바위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하니 신비로울 따름이다.

 

 

 

운주사의 일주를 마치고

일주문 쪽으로 행하는 잔디밭이다.

개망초 한 무더기가 메밀도 아닌 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얀 자태를 뽐낸다

무리지은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멀리 나란히 줄 지어 선 석불들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19개의 석불을 자리 좋은 곳으로

모셔 재 배치 해 놓았다.

 

 

 

하나하나 표정을 살폈다.

제일 마지막 석불은 올해 만들어 진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그 추모의 뜻을 담아 운주사에서 새긴 것이다.

이곳에서도 현실정치의 아픔을 떨치지 못하고

또 눈물 짓게 한다.

 

아직고 "세월호 특별법" 통과에 머뭇거리는 정치인은

분명 이 땅에 뿌리를 둔 우리 종족이 아닐 것이다

 

 

 

운주사 주변에서 흔한

여름 꽃!

운주사에서의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이 여행에 함께 동참한 지인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