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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감상

황석영의 밥도둑 4 - "카프카의 음울한 눈이 생각나는 밤에"

by bluesky0321 2020. 6. 11.

 

 

 

 

카프카의 음울한 눈이 생각나는 밤에

 

로마에 내린 것은 초저녁이었는데

나는 어느 결에 서울역 에 내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십여 년 전의 잡다한 활기가 느껴지던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말이다.

 

우선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인파를 거슬러 올라오는 청소년과 아주머니 한

무리와 어깨를 부딪치게 된다.

그들은 맞 춤한 상대와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온다.

펜시오네, 즉 여관 가자는 얘기고 체인지 달러는 달러 바꾸자는 소리다.

구내의 이곳저곳에서는 한 젊은이가 길을 떠나고 온 가족이

배웅을 나와서 떠들썩하다.

양친 부모는 물론이요, 조부모에 어린아이들까지 총동원되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관광지인 셈이고

할리우드 영화의 세트장으로 활용된 적이 많아서 낯익은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 관광객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인과 아시아인들을 노리는 치기배나 사기꾼들이 많기로도 유명해서,

누가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면 너나없이 조심 하라고 충고를 하면서

이탈리아 도둑들의 갖가지 수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내가 콜로세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소매치기들은 한국에서도 흔히 보던 가족형의 치기배들이었다.

우리 말로는 '회사'라고도 하는데,

사장이 있고 일꾼과 망보기와 바람잡이 등이 모두 한 팀이다.

내가 내릴 정류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살피는데,

무심코 옆을 넘겨다보니 일꾼이 한창 앞사람의 가방 지퍼를 열고 뒤지는 참이었다.

옆에 섰던 다른 사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애교 있게 눈을 끔쩍해 보이고는

신문지로 슬그머니 내 얼굴을 가렸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어린 남매를 데리고 나선 미국인 관광객 부부였다.

나는 그들이 회사원들이라는 걸 대번에 눈치챘다.

 

바람잡이가 내게 영어로 물었다.

“너 어디 가니?"

"콜로세움에 간다.”

“아, 그래? 바로 다음 정거장이 그곳이야.”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대꾸하고 얼른 내렸는데 살펴보니

두 정거장쯤 먼저 내린 셈이었다.

 

워낙에 내 행색이 초라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인상이 자신들과 다름없어서 그랬는지

나는 이탈리아에서 한번도 치기배나 도둑이 찍자를 붙는 일을 당한 적이 없다.

친구들 은 그래서 내가 그 고장에 맞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했다.

자기네 친구들은 건드리지 않으니 그 녀석들 의리있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리영희 교수 부부를 파리에서 만났는데

그분들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도 주의를 많이 들어서

잔뜩 긴장을 했더란다.

몇 번이나 자질구레한 고비를 넘기고,

그래도 크게 당하지는 않고서 무사히 이탈리아를 떠나는 기차를 탔다.

귀중품이 들어 있던 손가방은 리선생이 몸소 지니기로 했다.

먼저 가죽줄을 목에 걸고 그 줄을 양손으로 꼭 쥐고는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안쪽 자리에 앉았다.

 

두 양주가 이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가 국경을 넘어서자

아, 이젠 살았다 하고는 그만 잠이 설핏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기차는 여전히 남프랑스 해변을 달리고 있는데 가방이 온데간데가 없었다.

두 손에는 꼭 쥔 가죽줄만 달랑 남아 있었다.

누군가 감쪽같이 줄을 끊고 가방만 가져간 것이다.

리교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국경을 넘었어도 그 기차는 여전히 이탈리아 기차라는 사실을 잊었지 뭔가.”

 

로마의 식당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보다는

현지 사람들 이 외식을 나오는 곳을 찾아가는 게 훨씬 싸고 맛있는

로마 식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전채로 파스타 한 접시를 먹는다.

로마의 명물이 카르보나라 파스타니까 그걸 시킨다.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는 돼지 목살 고기와 달걀 로 조리한다.

돼지기름에 목살을 마늘과 더불어 볶고 잘 저은 달걀을 섞어서

검은후추와 파르메산 치즈가루를 뿌려 넣으면 소스가 준비된다.

삶은 스파게티를 이들과 버무리 기만 하면 된다.

 

입가심으로 안초비 샐러드를 먹어본다.

양파를 얇게 초 승달 모양으로 썰고 우리네 멸치젓 같은 안초비를 다져 넣어서

소금, 후추, 식초를 넣고 버무려 고소한 올리브유로 마무리한다.

주요리로는 양고기를 먹어보자.

 

양고기를 마늘과 함께 소금, 후추를 쳐서 볶는다.

로즈메리잎과 안초비 두어 마리, 마늘을 함께 찧고는

레몬즙을 적당히 짜 넣은 소스를 준비된 양고기 위에 뿌린다.

여기에다 해산물이 풍부한 나폴리와 시칠리아 요리 얘기까지 가면

이건 숫제 유럽에는 이탈리아 요리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파리에서 먹은 거위 간이나 생굴, 캐비아 등속의 전채는 독특하고,

돼지가 찾아낸다는 송로버섯이나 달팽이 요리도 그 소스의 풍미가 일품이다.

양파 수프와 콩소메, 그리고 어패류를 끓인 부야베스도 맛이 좋다.

양고기 필레나 와인으로 양념한 오리와 거위, 그리고 후식의 각종

과일 셔벗이 또한 인상적이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어느 나라나 대도시에는

국제적인 여러 나라의 음식들이 모여 있게 마련인데,

파리의 경우 아랍과 북아프리카 음식이며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요리도 맛있는 것이 많다.

 

특히 생각나는 것이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라는 음식이다.

쿠스쿠스를 먹으면서 나는 그게 좁쌀밥인 줄 알고 있었는데

덜 갈린 통밀의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다.

양파, 버섯, 옥수수, 완두콩 등을 볶아서 닭 육수에 조리한 쿠스 쿠스를

소금, 후추, 마늘로 양념하여 버무린 음식인데 꼬치구이 양고기와 곁들여 먹는다.

아랍, 아프리카권뿐만 아니 과 케밥처럼 터키를 비롯한

회교권 사람들이 모두 즐겨 먹는다.

 

파리 외곽으로 나가면 몇 군데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 어 있는데

여기서 베트남 쌀국수와 양념한 돼지갈비를 먹을 수가 있다.

나는 이제껏 그렇게 맛있는 돼지갈비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뿐이랴.

체코가 변하고 나서 어두운 프라하 역에서 내려 요기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작은 술집에서 빵과 먹던 뜨거운 수프 생각이 난다.

더구나 밖에는 겨울비가 축축이 내리고

카프카의 음울하게 큰 눈이 생각나는 그런 밤이었다.

구야시 수프가 그것이다.

 

원래는 헝가리 음식이지만 겨울철에는 서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러시안 수프와 함께 인기가 있다.

의 뼈를 오래 우려내어 양파, 월계수잎, 마늘로 맛을 내고

고기, 감자, 당근, 셀러리,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넣어 걸쭉하고

뭉근하게 끓인 국이다.

 

그러니까 다시 베를린의 장벽 너머 동독 쪽 알렉산더 광 장 건너편에 있던

오래된 러시안 레스토랑이 생각난다.

보르시치 수프는 뉴욕에서도 싸고 맛있는 유명한 집이 있었는데,

속풀이 서양 해장국으로는 으뜸이다.

따뜻한 수프 위에 스메타나라는 사워크림을 살짝 얹어주는게 특징이다.

 

그리스 식당 파르테논의 양고기, 생선, 양파 등

야채의 꼬치구이인 수블라키, 또는 감자와 돼지고기와 가지를 구운 무사카,

고기와 야채로 터키식의 얇게 구운 빵 속을 채운 기로스가 생각난다.

뉴욕에서 기로스를 주문했더니 웨이터가 구태여 자이로스라고

고쳐 말하던 것도 생각이 나고,

 

우리네 소주 같은 우조를 마시다가 고기는 싫고 속이 굴 풋하면

입가심을 위해서 딥을 바른 마른 빵을 먹는다.

나는 요즈음도 손쉽게 만들어 먹곤 하는데,

요플레를 사다가 오이를 거칠게 갈아 넣고

다진 마늘, 파슬리, 올리브 기름을 섞고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프라이팬에 잠깐 구워낸 바게트에다 발라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