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침햇살이 채 뚫지못한 뿌연 안개속에
같은 키를 한 낟가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어젯밤 사이좋은 형제들이 얼마나 열심히
서로를 위해 낟가리를 옮겼는지 생각해 본다.
한 켠에선 그 많은 땀과
눈물과 시름으로 한여름을 지낸 농군의 노고를 치하라도 하듯이
추수를 마칠 때까지 들판을 지킨 허수아비들이
한무리의 농악대가 되어, 징이며 꽹과리로 흥을 돋우고 있다.
지나가던 도심의 가을맞이 행락객들은
그저 신기한듯 허수아비의 손을 잡고 "김~치"하며 사진찍기에 바쁘다.
그들은 알까? 낟가리의 행복한 속삭임과 허수아비의 기쁜 몸짓을!
다들 이번주말의 설악산 단풍이 최고절정이란 뉴스를 들었는지
이른 아침이지만 차량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한시간반 남짓으로 홍천에 닿았지만 밀린 차량들은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
차속의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군데군데 새롭게 단장된 국도들이 개통된 구간에선 그나마
시원한 소통을 보여줘 다소 위안이 된다.
트랜스알프로 투어를 시작한 이래,
매월 한번이상은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투어를 떠났지만
이번처럼 마음 설레기는 처음이다.
그것은 올여름내내 각종 여행전문지에서
꼭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인 "3둔4가리"의
투어계획을 잡았기 때문이다.
3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달둔, 월둔을 가르키고,
4가리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거리를 말한다고 한다.
'둔'은 산기슭의 평퍼짐한 땅,
'가리'는 계곡가의 살 만한 땅을 뜻하는데 여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개인약수"와 "방동약수"가 있는
방태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투어는 항상 4~5명이 동일기종으로 떠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따님의 순산과 부친의 생신이라는 기쁜일이 겹친
동료들이 빠지는 바람에 연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며,
훗날도 기약하기 어려워 2명이 장도에
오르기로 했다.
벌써 늦가을로 접어든 강원도날씨에 부족한 방한대비로
홍천휴게소에 들어섰을땐 온 몸이 뻐근하며, 손가락 발가락이 딱딱하게
굳어옴을 느낀다.
한 잔의 커피로 피로를 달래고 있을 즈음,
추월당한 관광버스들이 속속 휴게소로 들어선다.
우리들 기성세대의 관광이란 것이 목적지에서의 성숙된 문화재 관람이라든가
휴양지에서 차분한 휴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흔들어대는 막춤은 어디서나 여전하다.
그래도 요즈음 버스들은 "에어 서스펜션"이라도 장착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휴게소에서 잠시 몸을 녹인 2대의 트랜스알프는
차 틈을 비집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로 향할수록 트인 도로는 넓어지고,
가슴에 와닿는 바람은 거세진다.
오토바이의 악셀은 묘한 것이라서
앞에서 제지하는 방해꾼이 없으면 끝까지 당겨지길 원한다.
헬멧이 이리저리 바람을 비켜가고 시선이 스피드메타를
주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악셀은 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제공한다.
그제서야 들판에서 추수를 막 끝내고
탈곡한 낟알을 말리는 농군의 정겨운 모습과 다소 늦은 논에 쌓인 낟가리가
양쪽시야로 들어온다.
관광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생각은 투어에도
변함이 없는데 달리다 보면 때론 이 철칙을 망각한다.
3둔4가리를 찾아감도 낯선곳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색다르게 느껴보고자 함이니 스치는 풍광의 가을정취도
이에 못지 않을진데 이를 등한시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홍천에서 이어진 44번 국도를 달린지 얼마 지나지않으면
철정검문소에 다다르게 된다.
목적지 방태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회전을 해야 하며,
계속해서 직진으로 내달으면 인제까지 한시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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