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바다의 기별 신간나왔네"
친구가 오랜만에 문자로 이렇게 안부를 전해왔다.
업무에 관련된 책으로만 머리가 도배될 때
그래도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안부처럼 접한 신간은 반드시 사 본다.
바다의 기별을 사러 갔다
법정스님의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도 덤으로 샀다.
법정스님의 산문집은 여럿 읽었는데
속세를 떠나 있지만 속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글이 아름답다.
"바다의 기별"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 닿는다.
김포반도와 강화도 너머의 밀물과 썰물이 이 내륙 하천을
깊이 품어서 숭어 떼들이 수면 위로 치솟고 호기심 많은 바다의 새들이
거기까지 물을 따라 갯벌을 쑤신다.
그 작은 물줄기는 바다의 추억으로 젖어서 겨우 기신기신 흐른다.
보이지 않는 바다가 그 물줄기를 당겨서 데려가고 밀어사 채우는데,
물 빠진 갯벌은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와도 같이 젖어서 질퍽거린다.
"광야를 달리는 말"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볗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군사재판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 국가보안법위반, 형법 상의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던 시인 김지하가 이날 영등포 교도소에서
형집행정지로 출감하는 날이었다.
저자 김훈이 기자시절 출감하는 장면을 취재한 글인데
김지하 출감 이면에 박경리 선생이 김지하의 아들을 안고
마중 나온 사실을 후에 쓴 글이다.
박경리가 김지하의 장모였구나......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연필로 글을 쓸 때, 어깨어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내 몸의 힘이 원고지 위에 펼쳐지면서 문장은 하나씩 태어난다.
살아 있는 몸의 육체감, 육체의 현재성 없이는 나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글은 육체가 아니지만, 글쓰기는 온전한 육체노동인 것이다.
나는 한번 쓴 글을 대부분 지워야 하기 때문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쓸 수가 없다.
"회상"
김훈은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니까,
그걸 뒤죽박죽 말하니까,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언어가 횡행할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는 갓이고
이 단절이 지금 거의 다 완성되어 있는것 같다는 것이
우이 언어 현싱에 대한 김훈의 인식이다.
나도 깊이 동감한다.
그래서 난 김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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