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이제 섬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대교 연결되어 육지와 다름없이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해를 생각할 때 마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치열했던 해전이 펼쳐진
곳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남해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심히 건너다니는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이란 곳은
이순신장군이 최후를 맞은 노량해전이
펼쳐진 곳이며,
남해에서 여수, 고흥, 완도를 거쳐 진도 앞바다까지
왜적 해군의 상륙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곳이
바로 이 남해 앞바다이기 때문이다.
때 마침 영화 "명량"의 개봉으로
이순신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조선의 앞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명장 이순신은
어떤 마음으로 왜적들과 맞섰을까?
그 두려움은 다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 좁은 남해 앞바다에서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가
치러지긴 했을까?
남해를 들를 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온다.
아뭍튼 선조들의 이런 수고로움이
후대의 우리가 이 풍요로움을 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해 앞바다를 둘러보며
명장 이순신을 기린다.
창선대교 앞
죽방림
수 백년을 이어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모인 멸치어장이다.
바다와 하늘과 산과 들은 푸르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필요치 않다.
그저 길이 있어 달릴 뿐이다.
이제 300km를 갓 넘긴 시점의
첫 투어다.
오늘 삼천포, 남해, 사천, 진주 등을
돌면 300km 정도를 더 할 것 같다.
남해를 들른 김에
금산 정상을 밟았다.
보리암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200 여 미터에 불과하나
대나무 숲과 기암으로 볼거리가 다양하다
681미터의 높지 않으나
남해 상주해수욕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풍광이 아주 훌륭하다
이곳은 고려시대때부터
봉수대로 이용되었다 한다.
지리적 위치로 왜적의 침략을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보리암자와
멀리 상주은모래비치가 보인다.
한때는 상주해수욕장이라 했으나
시대의 조류에 맞춰 네이밍을 새롭게 했다
남해 금산 정상의 기암들
정상의 화강암들이 이렇듯 깍여진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유구한 세월을 느끼며
앞에선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기암들 사이에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
보리암 석가여래입상
기계로 깍아 양산한 불상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불국사 석굴암에 들러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이유는 김대성의 손끝에서
땀과 눈물로 다듬어 진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금산을 내려와서
보리암과 용문사와 함께 남해에서
유명하다는 화방사를 찾았다.
태풍이 비껴간 자리지만 잔가지와 나뭇잎이
사찰 가는 길을 어지럽히고 있다
화방사 일주문
구름을 본다는 망운산이다.
일주문 안으로 펼쳐진
산사가는 길
인위적인 시멘트 길이긴 하나
세월이 녹아 있어 그럴 듯 하다
화방사 대웅전이다.
화방사는 16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역사가
깊은 절이다.
그러나 대웅전 앞에 상세한 설명이 없어 알길이 없다
대웅전 현판과 단청
사찰 건물을 보면 우리 조상의 한옥구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다
화방사도 많은 불사로 인해
여기저기 새로운 불당,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불사는 어려운 민중을 구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찰의 세를 과시하는데 쓰여진다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다른 길이라 생각된다.
가볍게 떠난 투어길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
남해 300km 첫 투어는 이렇게 마무리 한다.
'오토바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문사 소나무 숲과 SR400 (0) | 2014.08.17 |
---|---|
바다와 SR400 (0) | 2014.08.10 |
8월 첫 날, 휴가를 앞두고 (0) | 2014.08.01 |
야마하 SR400 첫 시동을 걸다 (0) | 2014.07.11 |
YAMAHA SR400 커스텀 바이크에 빠지다 (0) | 2014.07.01 |